분양 시장의 성적표는 보통 경쟁률로 읽습니다. 몇 대 몇으로 마감했는가, 1순위에서 끝났는가. 그런데 지난 9월 10일 주택산업연구원이 내놓은 숫자는 그 뒤편을 비춥니다. 8월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59.5%. 7월 68.1%에서 한 달 만에 8.6%포인트가 빠지면서 60% 선을 내줬습니다. 입주 지정기간이 끝난 단지에서 잔금을 치르고 실제로 들어간 집이 10채 중 6채가 채 안 된다는 뜻입니다. 당첨은 경쟁률로 끝나지만, 계약은 잔금으로 끝난다는 사실이 통계로 드러난 달이었습니다.
못 들어간 이유의 1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미입주 사유의 순서입니다. 잔금대출 미확보가 37.2%로 1위였고, 기존 주택 매각 지연 31.4%, 세입자 미확보 15.7%, 분양권 매도 지연 5.9%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 순서가 왜 중요한지 짚어보겠습니다. 기존 주택이 안 팔리거나 세입자를 못 구한 것은 '거래가 막힌' 문제입니다. 시장이 풀리면 시간이 해결해 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반면 잔금대출 미확보는 '돈을 빌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집값이나 매수 심리와 무관하게, 규제가 그대로인 한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습니다. 두 사유의 성격이 다른데, 지금 1위 자리를 차지한 쪽은 후자입니다.
배경에는 지난해 10월부터 강화된 스트레스 DSR이 있습니다. 수도권·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에는 3%포인트의 가산금리를 얹어 상환 능력을 계산합니다. 여기에 규제지역에서는 주택 가격대별로 대출 한도가 15억원 이하 6억원, 15억~25억원 4억원, 25억원 초과 2억원으로 묶여 있습니다. 2~3년 전 분양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의 조건과, 지금 잔금 창구에서 마주하는 조건이 같지 않습니다.
서울 82.0%, 지방 51.6% — 같은 하락이 아닙니다
권역별로 보면 수도권은 80.8%(7월 85.4%)입니다. 그중 서울이 82.0%로 90.5%에서 8.5%포인트 떨어졌고, 인천·경기는 80.2%로 낙폭이 2.7%포인트에 그쳤습니다.
비수도권은 다릅니다. 5대 광역시와 세종은 55.5%, 그 외 지방은 51.6%로 68.5%에서 16.9%포인트가 무너졌습니다. 분양받은 집 절반가량이 비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하락은 대출 한도에 걸린 하락이고, 지방의 하락은 애초에 팔 집도 들어올 세입자도 없는 하락입니다. 숫자는 같은 방향이지만 원인이 다르므로, 회복 경로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앞을 보는 지표도 함께 내려갔습니다. 9월 입주전망지수는 전국 87.6(8월 94.4), 수도권 81.0(89.4)입니다. 서울은 100.0에서 90.6으로 기준선 아래로 내려섰고, 인천은 83.8에서 65.3으로 18.5포인트가 빠졌습니다. 경기만 84.3에서 87.0으로 홀로 올랐습니다.
실수요자가 지금 확인해야 할 것
첫째, 잔금대출은 계약 시점이 아니라 입주 시점의 규제를 따릅니다. 중도금 무이자 조건에 시선을 두기 쉽지만, 결정적인 관문은 2~3년 뒤에 열립니다. 청약을 넣기 전에 입주 예정 시점의 예상 소득과 기존 대출을 기준으로 DSR을 미리 계산해 두시기 바랍니다.
둘째, 기존 주택 매각 계획을 잔금 일정보다 앞세워야 합니다. 미입주 사유 2위가 매각 지연 31.4%입니다. 거래가 얇아진 시장에서 '입주 전에 팔면 되겠지'는 가장 위험한 가정입니다.
셋째, 입주 물량이 몰린 단지의 전세 시세를 확인하십시오. 세입자를 구해 잔금을 메우는 전략은 같은 시기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을수록 불리해집니다. 입주장 전세가는 통상 일시적으로 눌립니다.
넷째, 매수를 고려한다면 반대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입주율이 낮은 단지에는 잔금을 감당하지 못한 물건이 전세나 급매로 나옵니다. 다만 이는 기회인 동시에 신호이기도 합니다. 그 단지의 수요가 얇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한편 같은 기관의 9월 분양전망지수는 86.3, 분양가격 전망지수는 108.8입니다. 분양가는 오를 것으로 보면서 분양 성적은 나빠질 것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파는 쪽과 사는 쪽 사이의 간격이, 지금은 잔금 창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