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전세로 사는 사람들이 이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9월 서울 전세 거래 가운데 56.7%가 갱신계약이었습니다. 1년 전(43.4%)보다 13.3%포인트 높습니다. 그 사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KB부동산 기준 7억2898만 원으로 역대 최고가 됐습니다.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전월세전환율은 4.31%로, 2017년 10월 이후 가장 높습니다. 세 숫자는 한 가지를 가리킵니다. 지금 서울 임대차 시장에서는 이사하는 쪽이 손해를 봅니다.
왜 다들 눌러앉는가
이유는 단순합니다. 새로 구하는 전세가 지금 사는 집보다 훨씬 비쌉니다. 뉴시스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올해 하반기(10월 20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2만7203건 가운데 갱신이 1만5061건(55.4%)이었습니다. 반기 기준으로 갱신이 절반을 넘은 것은 처음입니다. 강서구(67.2%)와 중랑구(66.6%)는 세 건 중 두 건이 갱신이었습니다.
같은 단지 안에서도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의 가격 차이가 큽니다. 성북구 래미안길음센터피스 59㎡는 이달 1일 6억5000만 원에 신규 계약됐는데, 16일에는 같은 층이 7억4000만 원에 계약됐습니다. 보름 만에 9000만 원이 오른 셈입니다. 세입자에게 갱신은 사실상 시세보다 싸게 사는 방법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쌓이면서 시장에 나오는 전세 물건이 더 줄었습니다. 이사하는 사람이 없으니 빈집이 나오지 않습니다. KB국민은행이 집계한 9월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20.7로, 2020년 임대차3법 시행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전세를 구하려는 사람이 공급보다 많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들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로 갭투자가 막히면서 집주인이 새로 내놓는 전세가 줄어든 점도 원인으로 꼽습니다. 부동산R114는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 약 2만5000가구에서 내년 1만8000여 가구로 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공급 쪽에서 숨통이 트일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
갱신청구권, 절반만 썼다
눈여겨볼 숫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9월 갱신계약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비중은 52.1%로, 전월(49.8%)보다 2.3%포인트 올랐습니다.
청구권을 쓰면 보증금 인상은 5% 안으로 묶입니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집주인과 합의해 갱신했다는 뜻이고, 합의 갱신에는 인상 상한이 없습니다. 포레나노원 84㎡ 사례처럼 갱신하면서 8000만 원(10.1%)을 더 낸 경우도 있습니다. '갱신했으니 5%만 올랐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갱신 세입자 사이에서도 부담 차이가 큽니다.
청구권은 한 임대차에서 한 번만 쓸 수 있습니다. 올해 청구권을 쓴 세입자는 2년 뒤인 2028년 계약 때 시세대로 다시 협상해야 합니다. 그 사이 전셋값이 지금처럼 오르면 2028년에 한꺼번에 올려야 하는 금액이 커집니다. 전세 시장의 부담이 사라진 게 아니라 뒤로 미뤄지고 있는 셈입니다.
월세로 바꾸면 4.31%
전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월세로 옮기는 사람에게도 조건이 나빠졌습니다. 이달 서울 아파트 전월세전환율 4.31%는 보증금 1억 원을 월세로 바꾸면 1년에 431만 원, 한 달에 약 36만 원을 낸다는 뜻입니다. 강북 14개 구가 4.36%로 강남 11개 구(4.24%)보다 높습니다. 강북 14개 구 평균 전셋값도 처음으로 6억 원을 넘었습니다(6억281만 원). 중저가 지역 세입자가 받는 압박이 더 큰 구조입니다.
전월세전환율은 시중 대출금리와 비교해 보면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전세대출 금리가 전환율보다 낮으면 대출을 더 받아 전세를 유지하는 쪽이 유리하고, 높으면 월세가 덜 손해입니다. 다만 대출 총량 관리가 계속되는 만큼 금리뿐 아니라 '대출이 실제로 나오느냐'도 함께 확인하셔야 합니다.
무엇을 봐야 하나
세입자라면 만기 6개월~2개월 전 갱신 협상 기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청구권은 아껴 둘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그 기간 안에 행사해야 하는 권리입니다. 합의 갱신을 제안받았다면, 청구권을 써서 5% 상한을 적용받는 경우와 비교한 뒤 결정하시는 게 맞습니다. 이미 청구권을 쓰셨다면 2028년 만기에 대비해 자금 계획을 미리 세워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집주인이라면 갱신 세입자가 늘수록 임대 수익은 시세를 바로 따라가지 못합니다. 본인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하면 실제로 거주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손해배상 책임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시장 전체로 보면 매매가 상승률은 줄어드는데(KB 10월 서울 +0.61%, 올해 최저) 전셋값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인 전세가율이 올라갈 수 있는 환경입니다. 전세가율이 높아지면 보통 매매 수요가 다시 살아나는 신호로 읽히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갭투자가 막혀 있어 과거처럼 바로 매수로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앞으로 몇 달은 KB 전세수급지수가 120선 아래로 내려오는지, 서울시 통계의 갱신 비중이 꺾이는지를 지켜보시면 됩니다. 두 지표가 꺾일 때 비로소 이사하는 세입자가 다시 늘고 전세 물건도 돌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