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구역 지정 도장을 누가 찍을지를 두고 서울에서 다툼이 커지고 있습니다. 동작구가 이끄는 서울 16개 자치구 태스크포스(TF)는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로 넘기는 기준을 '500가구 미만'에서 '면적 3만㎡ 이하'로 바꾸자는 안을 만들었습니다. 이 안은 오늘(14일) 제204차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정기회의에 올라간 뒤 국토교통부에 법령 개정 건의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하루 전인 13일에는 서울 약 65개 정비구역 조합장·추진위원장이 모인 서울시정비사업연합회가 서울시청 앞에서 "이양 추진을 즉시 멈추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같은 목표, 곧 '더 빠른 공급'을 내세우면서 정반대 결론에 이른 두 주장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무엇이 바뀌자는 것인가
지금 서울의 정비사업 인허가는 두 곳에서 나눠 맡습니다. 정비계획 수립,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착공신고, 준공인가 같은 절차는 이미 자치구가 처리합니다. 서울시에는 정비구역 지정과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통합심의가 남아 있습니다. 연합회는 이를 두고 "9개 권한 중 7개는 이미 구청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권한 이양 논의는 당정이 500세대 이하 정비사업의 인허가 권한을 기초단체장에게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본격화했습니다. 국토부는 8월부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고, 서울시는 8월 24일 입장문을 내고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습니다.
이번 TF 안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 기준 변경: '500가구 미만'을 '3만㎡ 이하'로 바꿉니다. 가구 수는 사업 도중 달라지지만 면적은 객관적이라는 이유입니다. - 경미한 변경 확대: 구역 면적, 기반시설 규모, 건폐율·용적률 변경을 '경미한 변경'으로 처리하는 기준을 10% 미만에서 20% 미만으로 넓힙니다. - 소규모 통합심의위원회 신설: 관계기관의 위원 추천을 의무화하는 방안입니다.
기준이 바뀌면 대상이 실제로 달라집니다. 서울경제에 따르면 영등포구 당산현대3차는 509가구로 500가구 기준에서는 9가구 차이로 빠집니다. 그러나 구역 면적이 1만8570.9㎡여서 3만㎡ 기준이면 이양 대상에 들어갑니다. 이 단지는 이달 초 서울시에서 구역 지정 고시를 받았습니다.
조합은 왜 '빨라진다'는 말을 믿지 않나
연합회 주장의 요지는 "병목은 구역 지정이 아니다"입니다. 신속통합기획이 도입된 뒤 구역 지정에 걸리는 기간은 5년 이상에서 2년 안팎으로 줄었습니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결정고시에는 약 84일, 통합심의에는 약 32일이 걸립니다. 연합회는 정작 오래 걸리는 단계가 추진위 승인, 조합 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처럼 이미 구청이 맡은 곳이라고 봅니다. 종로구 창신동 사업장 관계자는 6월 사업시행자 지정을 신청한 뒤 100일이 넘도록 고시가 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심의 인력도 쟁점입니다. 지금 서울시 통합심의에는 분야별 전문위원 약 30명이 참여합니다. 25개 구가 저마다 위원회를 꾸리면 단순 계산으로 약 750명이 필요하다는 추산이 나옵니다. 위원회 구성이 늦어지거나 심의 기준이 흔들리면 그 기간의 금융비용은 고스란히 조합원 몫이 됩니다.
용적률·기부채납·임대주택 비율이 구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연합회가 꼽는 우려입니다. 붙어 있는 구역이 따로 계획되면 도로와 공원을 확보하기 어려워 사업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반면 자치구는 '반복되는 절차'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구청이 계획을 세워 서울시에 올리고, 서울시 심의를 거쳐 다시 내려받는 왕복을 줄이면 작은 구역부터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내 구역에서 확인할 것
아직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오늘 협의회 안건은 건의안이고, 실제로 바뀌려면 도정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그때까지 실수요자와 투자자가 볼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 구역의 면적부터 확인하세요. 3만㎡ 이하인지, 500가구 미만인지에 따라 앞으로 심사할 기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구 수는 많아도 면적이 작은 중층 단지는 특히 눈여겨볼 만합니다. 2. 소속 구청의 처리 속도를 보세요. 권한이 넘어오면 구청의 인력과 처리 실적이 곧 사업 속도가 됩니다. 조합설립인가나 사업시행인가에 걸린 기간을 같은 구의 다른 구역과 비교해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잣대입니다. 3. 경미한 변경 20% 조항을 함께 보세요. 통과되면 용적률이나 구역 면적 조정이 빨라집니다. 그만큼 사업 조건이 덜 드러난 채 바뀔 여지도 커지므로, 총회 자료를 더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4. 처리기한 법제화가 함께 논의되는지 보세요. 연합회는 추진위 승인부터 관리처분인가까지 단계별 처리기한을 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누가 도장을 찍든 기한이 정해져야 속도가 예측 가능해집니다.
권한을 어디에 두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결재가 실제로 어디서 멈춰 있느냐입니다. 내 구역의 서류가 지금 어느 책상에서 몇 달째 머물러 있는지 확인해 보시면, 이번 논쟁이 내 사업에 어떤 의미인지 훨씬 분명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