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사업시행인가를 받았지만 아직 착공하지 않은 정비구역은 66곳입니다. 이 구역에 있는 기존 주택은 4만8249가구입니다.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이 올해 6월 말 기준 서울시 정비사업 추진 현황을 분석한 결과로, 10월 23일 여러 매체가 보도했습니다. 이 구역들은 대부분 앞으로 2~3년 안에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고 이주 단계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새 아파트가 늘어나는 것은 맞지만, 그전에 집이 먼저 사라지는 시기가 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 공백이 얼마나 크고 어디에 몰려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숫자로 본 '먼저 헐리는 집'
분석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규모: 66개 구역, 기존 주택 4만8249가구 - 쏠림: 1000가구 이상 대형 구역 12곳이 2만9849가구로 전체의 약 62%를 차지합니다 - 유형: 주택정비형 재개발 물량이 2만8670가구(약 59%)입니다. 단독·다세대·소형 연립이 많아 그동안 비교적 싼 전월세 역할을 해 온 집들입니다 - 새로 짓는 집: 6만3072가구로, 헐리는 집보다 1만4823가구 많습니다. 다만 이 가운데 임대주택은 9508가구(약 15%)뿐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공급은 늘어납니다. 문제는 시간 차이입니다. 철거부터 입주까지는 보통 수년이 걸립니다. 그동안 원래 살던 세입자와 조합원은 주변에서 집을 구해야 합니다. 새로 생기는 임대주택 비율이 15% 수준이라, 기존 저가 임대 수요를 다시 받아 주기에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다섯 개 구에 65.8%
이번 분석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지역 쏠림입니다. 멸실 예정 물량은 용산구가 8336가구(7곳)로 가장 많고, 관악구 6652가구(6곳), 영등포구 6215가구(10곳)가 뒤를 잇습니다. 이 세 구가 전체의 43.9%입니다. 송파구(5325가구)와 서대문구(5232가구)를 더하면 다섯 구가 65.8%를 차지합니다.
구역별로 보면 관악 신림1구역이 4410가구로 가장 큽니다. 서울대입구역과 신림동 일대는 청년·1인 가구 월세 수요가 몰리는 곳이라 영향이 월세 시장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용산에서는 한남4구역(3423가구)과 한남5구역(2635가구)을 합쳐 6058가구가 같은 생활권에 있습니다. 서대문 북아현3구역(3530가구), 송파 마천3구역(3036가구)과 거여새마을(1775가구), 영등포 신길제2구역(2790가구)도 규모가 큰 곳입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같은 생활권에서 대형 구역의 이주가 한꺼번에 겹치지 않도록 서울시와 자치구가 시기를 조율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주 시기에 맞춰 전세임대·매입임대 공급을 늘리고, 전월세 거래량과 가격을 상시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브레이크는 있지만, 기준은 2000세대
서울시에도 이런 상황에 대비한 제도는 있습니다. 2012년 도입한 '정비사업 시기조정 제도'입니다. 서울시가 올해 6월 낸 설명자료에 따르면 2000세대 이상 대규모 정비사업이 이주할 때 해당 자치구와 인접 자치구의 공급량·멸실량을 예측합니다. 주변 멸실량이 공급량의 30%를 넘으면 인가 시기를 최대 12개월까지 늦출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50건을 심의했고, 이 가운데 10개 구역의 인가 시기를 2~9개월 조정했습니다.
다만 이번 목록에서 2000세대를 넘는 구역은 신림1, 북아현3, 한남4, 마천3, 신길제2, 한남5 정도입니다. 개포주공6·7단지(1960가구), 상계2구역(1819가구), 미아9-2구역(1793가구), 거여새마을(1775가구)처럼 기준에 조금 못 미치는 중대형 구역은 심의 대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는 기준 아래라도 같은 생활권에서 몇 곳이 동시에 이주하면 체감 충격은 대형 구역 하나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제도의 빈틈으로 꼽힙니다.
무엇을 봐야 할까
세입자라면 사는 동네에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구역이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세요.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서 구역별 진행 단계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관리처분인가가 가까운 구역 주변이라면 계약 만기를 이주 예상 시점과 비교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재개발 구역 안에 사는 세입자는 요건(정비계획 공람공고일 기준 3개월 이상 거주 등)을 갖추면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있으므로 미리 확인해 두시기 바랍니다.
투자자·조합원이라면 두 가지를 보셔야 합니다. 하나는 사업 일정입니다. 2000세대 이상 구역은 시기조정 심의 결과에 따라 인가가 최대 1년 늦어질 수 있습니다. 같은 생활권에 경쟁 구역이 있다면 어느 쪽이 먼저 이주하느냐가 일정에 영향을 줍니다. 다른 하나는 주변 임대 시장입니다. 이주 수요가 몰리는 지역의 기존 아파트나 신축 전세는 단기 수요가 늘 수 있습니다. 다만 이주는 구역별로 순차 진행되고 시기조정도 적용되므로, "전세 대란이 온다"는 식으로 단정하는 것은 이릅니다.
이번 수치는 2~3년 뒤 서울 전월세 시장에 생길 압력을 미리 보여 줍니다. 헐리는 집과 새로 짓는 집의 개수보다 언제 헐리고 언제 입주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다섯 구의 관리처분인가 일정을 차례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