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일정표에서 늘 비어 있던 칸이 있었습니다. 바로 "구청이 언제까지 답해야 하는가"입니다. 서울시는 10월 27일 '정비사업 업무 처리기준 표준화 추진계획'을 세웠습니다. 25개 자치구에 내려보내고 바로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핵심은 숫자 두 개입니다. 신탁사 같은 사업시행자 지정은 30일 안에 처리하고, 관계기관 협의는 10일 안에 끝내라는 것입니다. 이 기준이 나온 계기는 종로구 창신9·10구역입니다. 지정 신청이 넉 달 넘게 구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기한이 생긴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 기한이 얼마나 힘을 갖는지는 따로 따져봐야 합니다.
창신9·10구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두 구역은 지난해 11월 정비구역 지정 고시를 마쳤습니다. 올해 6월에는 조합 대신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습니다. 아주경제와 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토지등소유자 동의율은 창신9구역 75.86%, 창신10구역 75.38%였습니다. 법정 기준인 75%를 넘긴 수치입니다.
하지만 지정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는 8월 28일, 9월 9일, 9월 21일 세 차례 종로구에 빨리 처리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종로구는 9월에 별도 TF를 꾸려 검토를 이어갔습니다. 10월 23일에는 동의서를 처음부터 다시 받으라고 추진위원회에 요구했습니다. 동의서를 받는 과정이 도시정비법 제132조(금품·향응 제공 금지 등)에 어긋난다고 본 것입니다. 75%를 채우는 과정에서 빌트인 가전, 발코니 확장, 시스템 에어컨 등 약 40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종로구는 추정분담금 산정 방식과 붙어 있는 두 구역의 공사비·분담금 차이도 검토 대상으로 꼽았습니다.
주민 측은 이미 법정 동의율을 넘겼는데 구청이 사업을 붙잡고 있다고 반발합니다. 동의서를 다시 받으려면 2~3개월이 걸립니다. 법적 다툼으로 번지면 수년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양쪽 주장 모두 아직 법원이나 상급기관의 판단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기준은 무엇을 바꾸나
조합설립인가에는 원래 30일이라는 법정 처리기한이 있습니다. 반면 공공시행자나 신탁사 같은 지정개발자를 지정하는 절차에는 기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재개발이라도 신탁 방식을 택하면 구청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는 이 빈칸을 조합설립인가 기준으로 메웠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업시행자 지정: 30일 이내 처리 - 신청 접수: 접수 즉시 관계 부서에 한꺼번에 보내고, 주민공람과 협의를 동시에 진행. 사전검토나 대면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접수를 미루거나 거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 - 관계기관 협의: 10일 이내, 한 번에 한해 5일 연장 가능. 기한 안에 답이 없으면 '의견 없음(원안 동의)'으로 간주 - 보완 요구: 최대 2회, 보완 기한은 10일 이내. 1차 보완 요구는 협의 기간이 끝날 때 한꺼번에 통보하고, 검토를 빠뜨렸다며 추가로 요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 - 이견 조정: 부서 간 의견이 엇갈려 협의가 10일 이상 길어지면 '공정촉진책임관'이 조정회의를 바로 소집
명노준 서울시 주택실장은 "자치구별 행정 편차를 줄이고, 예측 가능한 정비사업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시는 10월 26일 국토교통부에 30일 기한을 도시정비법 등에 명시해 달라고 건의했습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세 가지
첫째, 아직은 내부 지침이고 법이 아닙니다. 30일 기준은 서울시 행정 내부 기준입니다. 법적 강제력이 없습니다. 구청이 기한을 넘겨도 바로 위법이 되지는 않습니다. 실제 효력은 국토부가 건의를 받아들여 법령이 바뀌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법 개정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둘째, 이미 접수된 사업은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시행 전에 접수된 사업은 자치구가 원하거나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만 이 기준을 적용합니다. 계기가 된 창신9·10구역도 기준이 생겼다고 지정이 바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이 기준은 앞으로 들어올 신청서에 더 크게 작용합니다.
셋째, 기한은 빨리 결론을 내라는 뜻이고, 인가를 해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30일 안에 처리하라는 것이지 30일 안에 승인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 하자가 있다면 기한 안에 '반려'로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신탁 방식 구역에 투자를 검토하신다면 동의율 숫자만 보지 마십시오. 동의서를 어떻게 받았는지, 반대 민원이 있는지, 추정분담금 근거가 공개됐는지도 함께 확인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정리하면 이번 조치는 정비사업에서 가장 계산하기 어려웠던 "구청이 언제 결론을 내느냐"에 처음으로 시한을 그은 것입니다. 기간이 줄면 금융비용과 분담금 부담도 줄어듭니다. 다만 시한이 실제로 지켜지는지는 앞으로 접수되는 사업에서 확인됩니다. 국토부의 법 개정 여부와 첫 적용 사례의 처리 기간을 지켜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