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멈추는 지점은 대체로 심의나 인가 단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서울 정비사업 현장에서 실제로 발이 묶인 곳은 그보다 훨씬 뒤, 이주 단계였습니다. 관리처분인가까지 다 받아놓고도 조합원이 살던 집을 비우지 못해 철거가 시작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2026년 8월 10일 복수 매체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발표할 주택 공급대책에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추가 이주비 대출 보증 상품 신설을 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4%와 8% 사이, 조합원이 떠안은 이자
이주비는 조합원이 새 아파트가 완공될 때까지 살 곳을 구하는 데 쓰는 돈입니다. 통상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이 붙는 기본 이주비로, 금리가 연 4%대 수준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본 이주비만으로 부족할 때 시공사가 자체 신용으로 조달해 주는 추가 이주비인데, 금리가 연 6~8%대까지 올라갑니다.
문제는 기본 이주비 쪽이 좁아졌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6·27 대책으로 이주비 대출 한도가 6억 원에 묶였고, 이어 10·15 대책으로 규제지역 LTV가 70%에서 40%로 내려갔습니다. 다주택자는 아예 0%입니다. 정비사업 조합에는 임대를 놓던 조합원이 상당수 섞여 있기 때문에, 이 규정 하나로 대출이 전면 차단되는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그 공백은 고스란히 추가 이주비로 넘어갑니다. 동작구 노량진3구역 조합이 조합원에게 공개한 시뮬레이션에서는 추가 이주비 예상 금리가 최대 연 7.0%로 제시됐습니다. 1억 원을 5년간 빌리면 이자만 4250만 원입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이주를 거부하는 편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구간이 생깁니다.
담보를 '헐릴 집'이 아니라 '지어질 집'으로
이번에 거론되는 대책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HF가 추가 이주비에 공적보증을 붙여 금리를 낮추고 한도를 넓히는 것입니다. 민간 신용에 기대던 조달을 공적 신용으로 갈아 끼우는 구조입니다.
둘째가 더 근본적입니다. 담보 평가 기준을 종전자산에서 종후자산으로 바꾸는 안입니다. 지금은 철거될 낡은 주택의 가치를 담보로 잡습니다. 서울 강북권 노후 주택가처럼 종전자산 평가액 자체가 낮은 곳에서는 LTV를 그대로 적용해도 나오는 돈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를 준공 후 새 아파트 가치 기준으로 바꾸면 같은 비율에서도 한도가 크게 늘어납니다.
다만 이 방식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자산을 담보로 잡는 셈이라, 사업이 중단되면 보증기관이 위험을 떠안습니다. 최종안에서 어떤 안전장치가 붙는지가 실효성을 좌우할 대목입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확인할 것
첫째, 발표 문안에서 '검토'와 '시행'을 구분해 읽으십시오. 현재까지는 모두 검토 단계 보도입니다. 상품 출시 시점, 보증료율, 다주택 조합원 적용 여부가 확정돼야 현장 자금 계획이 움직입니다.
둘째, 관심 구역의 이주 시기를 확인하십시오. 올해 3분기 이주 예정 사업장은 19곳, 1만5619가구로 집계됐습니다. 노량진1구역(동작), 상계2구역(노원), 방화3구역(강서) 등이 여기 포함됩니다. 서울 정비사업장 43곳 중 39곳이 대출 규제 영향권이라는 조사도 있습니다. 대책이 나와도 이미 이주가 진행 중인 곳은 소급 적용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셋째, 입주권 매수를 검토 중이라면 조합의 이주비 조건을 계약 전에 직접 확인하십시오. 추가 이주비 금리와 이자 부담 주체(조합원 부담인지 사업비 처리인지)는 조합마다 다릅니다. 시세만 보고 들어갔다가 이주 시점에 수천만 원대 금융비용을 마주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누가 더 나은 이주비 조건을 조달하느냐"가 수주전의 판세를 가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정비사업의 속도는 결국 돈이 도는 속도입니다. 인허가가 아무리 빨라도 이주 단계에서 자금이 끊기면 사업 기간은 늘어나고, 그 비용은 분양가로 옮겨갑니다. 이번 대책이 병목을 어디까지 풀어낼지는 8월 발표문의 세부 조건에서 판가름 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