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방법원 경매 법정의 처리 속도가 두 달 사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신청한 경매 사건의 월평균 진행 건수는 올해 1~6월 43건이었습니다. 7~8월에는 181건이 됐습니다. 약 4배입니다. 부동산 시장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법원 안에 HUG 사건만 맡는 '전담 경매계'가 생긴 결과입니다. 전세사기와 역전세로 멈춰 있던 주택들이 경매 시장에 더 빨리 나오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두 달 만에 4배, 무엇이 바뀌었나
HUG와 부산지법이 9월 11일 밝힌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산지방법원은 7월 1일 HUG 경매 사건을 전담하는 경매계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법원행정처, 부산지방법원, HUG 세 기관이 함께 추진했습니다.
지금까지 HUG가 신청한 경매는 일반 경매계에서 다른 사건과 함께 처리됐습니다. 부산에서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가 늘면서 HUG 사건이 쌓였고, 일반 사건과 섞이면서 병목이 생겼습니다. 사건을 따로 떼어 한 곳에 모으자 진행 속도가 빨라진 것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지방법원이 특정 기관의 사건만 맡는 경매계를 따로 둔 것은 처음입니다.
181건이라는 숫자는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이는 경매가 '진행'된 건수입니다. 낙찰된 건수나 HUG가 돌려받은 금액이 아닙니다. 진행이 빨라진 것과 보증금이 회수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회수율이 얼마나 나아지는지는 앞으로 발표될 자료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왜 중요한가 — 멈춰 있던 '사고 주택'이 나온다
구조부터 보겠습니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HUG가 먼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내줍니다. 이를 대위변제라고 합니다. 이후 HUG는 그 돈을 회수하려고 해당 주택의 경매를 신청합니다. 경매가 늦어지면 HUG의 자금 회수도 늦어지고, 주택은 그동안 비어 있거나 권리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습니다.
진행이 빨라지면 두 가지가 달라집니다.
첫째, HUG의 자금 회전입니다. HUG는 보증사고 주택을 직접 낙찰받은 뒤 시세보다 싸게 전세로 공급하는 '든든전세주택'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인호 HUG 사장은 이번 조치로 채권 회수 기간이 짧아지고, 경매 적체를 겪는 다른 지역 법원으로 협력 모델이 퍼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둘째, 부산 경매 시장의 물건 수입니다. 한 달에 40건 남짓 나오던 HUG 물건이 180건 안팎으로 늘었습니다. 대부분 빌라·오피스텔 같은 비아파트일 가능성이 큽니다. 입찰할 물건이 많아지는 만큼 유찰도 쉽게 반복될 수 있습니다.
입찰자가 봐야 할 것
HUG가 신청한 물건은 권리관계가 일반 물건과 다릅니다. 싸게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 대항력 포기 여부부터 확인하세요. HUG는 보증금을 대신 갚아준 임차인의 지위를 이어받습니다. 이 임차권이 낙찰자에게 넘어가면 낙찰가와 별도로 보증금을 떠안아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HUG는 유찰이 반복되는 물건에 대해 법원에 '임차권 인수조건 변경'을 신청하기도 합니다. 대항력을 포기하고 매각대금에서 배당만 받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내용이 매각물건명세서에 적혀 있는지가 첫 번째 확인 사항입니다. - HUG도 입찰자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든든전세 공급을 위해 HUG가 직접 낙찰받는 사례가 있습니다. 입지가 괜찮은 물건이라면 경쟁 상대가 한 명 더 있다고 생각하고 가격을 정해야 합니다. - 물건이 늘어나는 속도를 가격에 반영하세요. 진행 건수가 4배로 늘었지만 사려는 사람까지 4배로 늘지는 않습니다. 같은 권역에서 비슷한 물건이 연달아 나올 수 있으니 한 번 더 유찰될 가능성도 따져볼 만합니다. - 점유 상태와 명도를 확인하세요. 보증금을 받은 임차인이 이미 나갔는지, 제3자가 살고 있는지는 현장에서 직접 봐야 합니다. 명도 비용과 기간은 수익률에 바로 영향을 줍니다. - 다른 법원으로 퍼지는지 지켜보세요. HUG는 이 방식이 다른 지역에도 퍼지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보증사고가 몰린 수도권 법원에 비슷한 전담 조직이 생기면 그 지역 비아파트 경매 물건도 한꺼번에 늘어날 수 있습니다.
임차인과 실수요자에게
부산에서 보증사고를 겪은 임차인은 HUG에게서 이미 보증금을 받았다면 경매 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 보증금을 받지 못했거나 보증에 가입하지 않은 임차인은 사정이 다릅니다. 같은 건물의 다른 호실 경매가 빨리 진행되면 배당요구 종기 같은 기한이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법원 송달 우편물을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실수요자에게는 든든전세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경매로 확보한 주택이 공공임대로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짧아질 수 있어서입니다. 부산 지역 모집 공고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43건이 181건이 됐다는 것은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는 뜻입니다. 싸게 살 기회가 늘었다는 뜻과는 다릅니다. 물건이 많아질수록 권리분석을 제대로 하는 입찰자와 그렇지 않은 입찰자의 결과 차이도 커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