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법원, 같은 날, 같은 경매 법정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시장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전국 아파트 경매 매각가율은 84.7%였습니다. 감정가 10억 원짜리가 8억 4700만 원에 팔렸다는 뜻입니다. 같은 달 수도권 지식산업센터(지산)의 매각가율은 47.3%였습니다. 10억 원짜리가 4억 7300만 원에 팔렸습니다. 절반도 안 되는 값입니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4305건이 나왔는데, 902건만 팔렸습니다
지지옥션 집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수도권 법원경매에 부쳐진 지식산업센터는 4305건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679건과 비교하면 156% 늘었습니다. 2.5배가 넘습니다. 이 중 실제로 낙찰된 건 902건, 낙찰률은 21%에 그쳤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22.5%)보다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매각가율은 더 가파릅니다. 연초 50%대 중반이던 것이 7월 47.2%, 8월 47.3%로 두 달 연속 50% 선 아래에 머물렀습니다. 매각가율이 50% 아래라는 것은 감정가에서 최소 두 번 이상 유찰된 물건이 세 번째, 네 번째 기일에서야 겨우 주인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경매에서 한 번 유찰될 때마다 최저가는 통상 20~30%씩 깎입니다. 반값에 내놔도 응찰자가 붙지 않는 구간이 만들어진 겁니다.
숫자 하나를 더 붙이면 그림이 선명해집니다. 8월 전국 아파트 경매의 평균 응찰자는 5.3명, 서울은 6.1명이었습니다. 지산 경매는 응찰자 2명대를 오갑니다. 물건은 2.5배로 늘었는데 사겠다는 사람은 그대로인 시장입니다.
원인은 경매장 밖에 있습니다
지산 경매가 늘어난 이유는 경매 통계가 아니라 준공 통계에 있습니다. 2010년대 후반 과잉 인허가된 물량이 2024~2025년에 한꺼번에 준공됐습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자료를 보면 2023~2025년 준공된 153곳의 공실률은 43.5%, 미분양률은 26.9%입니다. 전체 지식산업센터 평균이 공실률 16.6%, 미분양률 9%인 것과 비교하면 최근 준공분에 문제가 집중돼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자금줄이 끊겼습니다. 지산은 비주택이라 주택담보대출 규제의 직접 대상은 아니지만, 담보가치가 떨어지면서 중도금·잔금대출 자체가 막혔습니다. 잔금을 못 낸 분양계약자의 물건이 그대로 경매로 넘어옵니다. 만기가 돌아온 기존 대출도 연장할 때 금융사가 원금 일부 상환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산 대출 만기는 통상 3~5년 단위라, 2021~2023년 분양분의 만기가 지금 몰려 있습니다.
거래 시장도 함께 얼어붙었습니다. 올해 2분기 전국 지식산업센터 매매거래량은 560건으로 전년 동기(837건)보다 33.1% 줄었고, 거래금액은 2179억 원으로 40% 감소했습니다. 급매로도 안 빠지니 경매로 오고, 경매에서도 안 팔리니 적체가 쌓입니다.
무엇을 봐야 하는지
첫째, 매각가율 47%를 '싸다'로 읽지 마십시오. 감정가는 통상 1~2년 전 시세를 기준으로 잡힙니다. 공실률 43%인 건물에서 감정가의 절반은 저가가 아니라 현재 시세일 수 있습니다. 낙찰 후 임차인을 못 구하면 관리비와 대출이자가 매달 나갑니다.
둘째, 입주 자격과 업종 제한을 먼저 확인하십시오. 지식산업센터는 제조업·정보통신업 등 입주 가능 업종이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낙찰받아도 자격 요건을 못 맞추면 직접 사용이 불가능하고, 임대 역시 제약이 따릅니다. 아파트 경매와 권리분석의 결이 다릅니다.
셋째, 정책 변수는 아직 열려 있습니다. 정부는 용도전환, 입주 업종·자격 개편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준비 중입니다. 주거용 전환이나 업종 완화가 실제로 이뤄지면 개별 물건의 가치는 크게 갈립니다. 다만 건물 구조상 주거 전환이 가능한 곳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대책의 방향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역세권 여부와 실제 임차 수요가 있는 층·면적인지가 더 확실한 판단 기준입니다.
아파트 경매장의 낙찰가율이 97%라는 뉴스와, 같은 건물에서 47%가 찍힌다는 사실은 모순이 아닙니다. 팔리는 자산과 안 팔리는 자산의 거리가 그만큼 벌어졌다는 신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