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물건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은행 장부에서 나옵니다. 대출이 부실로 분류되고, 은행이 그 채권을 털어내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그 담보물은 경매나 공매로 향하는 줄에 섭니다. 그래서 경매 시장의 6개월 뒤를 보려면 낙찰가율보다 먼저 은행의 건전성 지표를 봐야 합니다. 9월 2일 발표된 수치는 그 줄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18조9000억 — 8년 만의 최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국내은행의 부실채권은 18조9000억원입니다. 3월 말 17조7000억원에서 한 분기 만에 1조2000억원이 늘었고, 2018년 6월(19조4000억원) 이후 8년 만에 가장 많습니다. 부실채권비율은 0.63%로 전 분기 0.60%, 1년 전 0.59%에서 조금씩 올라섰습니다.
중요한 건 총량이 아니라 구성입니다. 18조9000억원 중 기업여신이 15조2000억원, 가계여신은 3조4000억원입니다. 기업여신 부실비율은 0.77%로 2021년 3월 이후 최고치인 반면, 가계여신은 0.33%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주택담보대출 부실비율은 0.22%입니다.
2분기에 새로 생긴 부실 7조2000억원의 내역은 더 선명합니다. 기업이 5조7000억원, 그 안에서 중소기업이 4조5000억원으로 한 분기 만에 1조2000억원 불었습니다. 중소법인의 부실비율은 1.08%, 개인사업자는 0.67%입니다. 즉 지금 쌓이고 있는 부실은 아파트를 산 가계가 아니라, 상가·공장·사무실을 담보로 돈을 빌린 사업자 쪽입니다.
142.9% — 방어력이 줄면 처분이 빨라진다
경매·NPL 시장이 실제로 주목해야 할 숫자는 따로 있습니다. 대손충당금적립률 142.9%입니다. 1년 전 165.5%, 직전 분기 150.4%에서 계속 내려왔습니다. 충당금 잔액 자체는 26조9000억원으로 적지 않지만, 부실이 늘어나는 속도를 충당금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지표가 낮아지면 은행의 선택지는 좁아집니다. 충당금을 더 쌓거나(이익 감소), 부실채권을 장부에서 덜어내거나(상각·매각) 둘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은행권은 2분기에만 6조1000억원을 상각·매각으로 정리했습니다. 담보가 붙어 있는 채권은 대개 상각이 아니라 매각으로, NPL 투자사를 거쳐 경매 신청으로 이어집니다. 은행 장부에서 사라지는 6조1000억원의 상당 부분이 몇 달 뒤 법원 경매계와 온비드 목록에 다시 나타나는 구조입니다.
물건은 늘어도, 값은 그만큼 안 빠집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어야 합니다. "물건이 쏟아지면 싸게 산다"는 기대입니다. 삼정KPMG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NPL 평균 매입률은 68.2%였습니다. 투자사들이 부실채권을 채권 원금 대비 68% 선에서 사갔다는 뜻이고, 그만큼 비싸게 산 쪽은 경매에서 그 아래로 낙찰되는 걸 두고 보지 않습니다. 방어입찰이 들어오고, 유찰은 늘어도 최저가 근처의 헐값 낙찰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시장 데이터도 같은 방향입니다. 지지옥션 기준 8월 셋째 주 수도권 아파트 경매는 303건이 진행돼 매각률 34.0%, 낙찰가율 89.8%, 평균 응찰자 6.5명이었습니다. 서울만 보면 매각률 40.0%, 낙찰가율 98.6%입니다. 3분의 2가 안 팔리는데 팔린 것의 값은 감정가에 붙어 있습니다. 물건 수와 가격이 따로 움직이는, 전형적인 옥석 가리기 국면입니다.
공매도 물량은 넉넉합니다. 캠코는 8월 초 2254건·1조650억원, 8월 말 1659건·5967억원 규모의 압류재산 공매를 진행했습니다.
무엇을 봐야 하는가
첫째, 물건 종류를 구분하십시오. 늘어나는 부실의 무게중심이 중소기업·개인사업자에 있는 만큼, 앞으로 나올 물건은 아파트보다 근린상가·지식산업센터·공장·토지 쪽에 몰릴 가능성이 큽니다. 이 종목들은 매각률이 주거용보다 구조적으로 낮고, 유찰이 반복돼도 그게 곧 기회는 아닙니다. 임차인 명도, 유치권 주장, 부가세 처리처럼 주거용에는 없는 변수가 붙습니다.
둘째, NPL이 붙은 물건인지 확인하십시오. 등기부에서 근저당권자가 은행에서 유동화전문회사(SPC)나 대부업체로 바뀌어 있다면 채권이 이미 매각된 물건입니다. 이 경우 매입률 아래로는 낙찰이 어렵다고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감정가 대비 몇 %를 쓸지 계산하기 전에, 채권자가 얼마에 샀을지를 먼저 가늠해야 합니다.
셋째, 주거용 실수요자라면 조급할 이유는 없습니다. 주담대 부실비율 0.22%는 가계 담보 물건이 대량으로 밀려나올 상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이 98%대라면 경매의 이점은 가격이 아니라 매물 접근성입니다. 시세보다 싸게 사는 게 목적이라면, 지금 경쟁률이 낮은 쪽은 아파트가 아닙니다.
넷째, 다음 분기 지표를 달력에 적어두십시오. 충당금적립률이 140% 아래로 더 내려가는지, 신규부실 7조2000억원 흐름이 이어지는지가 연말 이후 경매 물건 수를 결정합니다. 지표가 더 나빠지면 은행의 매각은 빨라지고, 물건은 늘고, 그럼에도 값은 68.2%라는 바닥에 받쳐질 것입니다.
경매는 남의 사정으로 열리는 시장입니다. 그 사정이 어디서 생기고 있는지를 알면, 어떤 물건 앞에 줄을 서야 할지도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