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에서 가장 강한 무기는 돈이 아니라 순위입니다. 그런데 그 순위가 피해자끼리 겨루는 데 쓰이는 구조가 있습니다.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이야기입니다. 국토교통부 집계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은 누적 4만278건이고, 이 중 다가구주택이 7464건(18.5%)입니다. 다세대(28.7%), 오피스텔(20.8%)에 이어 세 번째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 7464건이 다른 유형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등기가 한 개라는 것입니다.
다세대는 호별 등기, 다가구는 건물 한 개 등기
같은 빌라처럼 보여도 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물건입니다. 다세대주택은 101호·102호가 각각 독립된 등기를 가진 집합건물입니다. 경매도 호별로 따로 진행되고, 한 호실의 임차인은 그 호실만 상대하면 됩니다.
다가구주택은 단독주택입니다. 세대가 여덟이든 열둘이든 건물 전체가 등기 하나, 경매도 물건 하나입니다. 경매가 열리면 그 건물에 사는 모든 임차인의 보증금이 한 덩어리로 순위를 다툽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날짜가 하루만 늦어도 배당 순위가 밀리고, 낙찰가가 보증금 총액에 못 미치면 후순위 임차인은 한 푼도 못 받는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피해 보증금이 1억원 이하 42.0%, 1억~2억원 43.4%로 3억원 이하가 97.6%에 몰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위 하나가 곧 전 재산인 사람들입니다.
우선매수권이 서로를 밀어내는 이유
전세사기피해자법은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줍니다. 매각기일까지 최고가매수신고가격과 같은 금액을 써내겠다고 신고하면, 법원이 그 피해자에게 매각을 허가하는 제도입니다. 이 권리는 LH 등 공공주택사업자에게 양도할 수도 있습니다. 양도하면 LH가 낙찰받아 피해자에게 최장 10년간 공공임대로 거주하게 하고, 감정가와 낙찰가의 차액(경매차익)으로 임대료나 보증금 일부를 보전해 줍니다.
문제는 다가구입니다. 물건이 하나이니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낙찰받는 사람도 한 명뿐입니다. 같은 건물의 피해자 열 명이 각자 권리를 갖고 있어도, 결과적으로 건물 전체를 손에 넣는 것은 자금을 동원할 수 있었던 한 명입니다. 나머지는 그대로 배당 순위 싸움에 남고, 감정가와 낙찰가의 차익은 낙찰받은 개인에게 귀속됩니다. 8월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적된 것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여러 피해자가 경쟁적으로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면 "일부 피해자만 차익을 얻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국회가 건드리려는 건 '매각허가 상대방'이다
논의 중인 개정 방향은 단순합니다. 다수 피해자가 얽힌 물건에서는 공공주택사업자에게만 매각을 허가하도록 단서 조항을 신설하자는 것입니다. 개인 간 경합을 없애고 LH가 통째로 사들여 전체 피해자를 한 번에 구제하는 방식입니다. 같은 날 특화형 공공임대주택의 법적 근거를 담은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도 발의됐습니다.
다만 냉정하게 볼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는 상임위 논의와 개정 추진 의사 표명 단계이지, 통과된 법이 아닙니다. 재정 부담과 사유재산권 제약이라는 반론도 이미 제기돼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 매입이 만능은 아닙니다. LH의 피해주택 누적 매입은 1만256가구, 2026년 들어 월평균 752가구입니다. 사전협의 요청 2만3712건 중 매입 가능 판정은 1만6072건이었습니다. 요청의 3분의 1가량은 애초에 매입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지금 무엇을 봐야 하나
임차인이라면 계약 전에 건축물대장에서 '다가구(단독주택)'인지 '다세대(공동주택)'인지부터 확인하십시오. 다가구라면 등기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확정일자 부여 현황을 열람해 나보다 앞선 임차인의 보증금 총액을 확인하고, 그 합계에 근저당까지 더한 금액이 건물 시세를 넘는지 계산해야 합니다. 넘는다면 계약 자체를 다시 생각할 문제입니다.
이미 경매가 진행 중인 피해자라면, 개인 우선매수와 LH 양도 중 무엇이 유리한지를 배당 순위 기준으로 따져야 합니다. 선순위라면 배당으로 회수하는 편이 나을 수 있고, 후순위라면 양도 후 거주 유지와 경매차익 보전 쪽이 현실적입니다. 배당요구 종기일은 놓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긴급 경·공매 유예 협조요청 결정이 누적 1212건에 그친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예는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입찰자 입장에서도 다가구 물건은 난이도가 다릅니다. 등기 하나에 임차인 관계가 여럿 얽혀 있어, 대항력 있는 임차인의 인수 보증금을 빠뜨리면 낙찰가보다 인수액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번 논의가 법으로 확정되면 다수 피해자가 있는 다가구 물건은 일반 입찰자에게 아예 문이 닫힐 수도 있습니다. 관심 물건이 있다면 국회 처리 경과를 함께 따라가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