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재개발 시장에서 정반대 방향의 소식 두 개가 같은 날 나왔습니다. 경기 성남에서는 수진2구역 등 5개 구역이 정비구역으로 지정·고시되며 1만3505세대 규모의 재개발 판이 열렸습니다. 정비계획 착수부터 지정까지 약 11개월, 전국 최단기 수준입니다. 같은 날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2지구에서는 2조원대 시공사 선정 입찰이 마감됐는데, 들어온 건설사는 단 한 곳이었습니다. 경쟁입찰이 성립하지 않아 유찰됐습니다.
행정 절차는 빨라졌는데, 정작 집을 지을 회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여기입니다.
조건을 풀어줬는데도, 한 곳이었다
성수2지구 조합이 이번에 제시한 예정 공사비는 2조137억3940만원(부가세 제외)입니다. 주택용지 기준 지하 6층~지상 65층이 들어서는 한강변 대형 사업장입니다. 조합은 지난해 입찰 당시 약 1조7846억원이던 예정 공사비를 2조137억원으로 올렸고, 총 1000억원인 입찰보증금 가운데 현금 납부분도 1000억원에서 700억원으로 낮췄습니다. 나머지 300억원은 이행보증보험증권으로 대체할 수 있게 했습니다.
돈도 더 얹고, 진입 문턱도 낮췄습니다. 그런데 응찰한 곳은 DL이앤씨 한 곳뿐이었습니다. 관심을 보이던 HDC현대산업개발은 끝내 입찰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 사업장은 지난해 10월 입찰에서는 아예 무응찰로 유찰된 전력이 있습니다. 조건을 크게 완화한 재도전에서도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조합은 이른 시일 안에 재입찰 공고를 낼 예정입니다. 재입찰에서도 단독 응찰에 그치면 수의계약 방식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같은 날, 목동에서도 똑같았습니다
성수2지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날 마감된 서울 양천구 목동12단지 재건축 입찰에서도 GS건설만 단독으로 응찰해 유찰됐습니다. 예정 공사비는 약 1조7888억원. 현장설명회에 참여했던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는 응찰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2조원급과 1조8000억원급 사업장이 나란히 경쟁 실종으로 유찰된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 공사원가가 오른 데다 사업장별 수익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건설사들의 '선별 수주' 기조가 굳어진 결과로 봅니다. 규모가 크다고 해서 자동으로 수주 경쟁이 붙던 시절이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속도는 행정이 만들지만, 가격은 시장이 만듭니다
정부와 서울시는 정비사업의 '속도'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8·13 공급대책은 조합설립 동의율을 75%에서 70%로 낮추고 절차를 간소화해 2030년까지 수도권 정비사업 23만4000가구 착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8월 26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 회동에서는 민간 재개발·재건축의 법적상한용적률을 공공 수준인 1.2배까지 완화하는 방안이 논의됐습니다. 서울시는 이 경우 2031년까지 순증 물량이 8만7000가구에서 13만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합니다. 다만 국토부는 "정해진 바 없다"며 선을 그은 상태입니다.
성남의 11개월 최단기 지정도 같은 흐름입니다. 하지만 정비구역 지정과 조합설립은 사업의 출발선일 뿐입니다. 시공사가 붙지 않으면 그다음 공정은 멈춥니다. 그리고 경쟁 없이 수의계약으로 넘어가면, 공사비와 계약 조건 협상에서 조합의 위치는 눈에 띄게 불리해집니다.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투자자든 실수요자든, 앞으로 정비사업장을 볼 때 확인해야 할 항목은 분명해졌습니다.
첫째, 응찰 건설사가 몇 곳인지입니다. 예정 공사비 규모보다 응찰 건수가 더 정확한 사업성 신호입니다. 둘째, 유찰 이력과 수의계약 전환 여부입니다. 두 번 이상 유찰된 뒤 수의계약으로 간 사업장은 최종 계약 공사비가 예정 공사비를 웃돌 가능성을 열어두고 봐야 합니다. 셋째, 예정 공사비와 실제 계약 공사비의 차이입니다. 이 격차가 곧 조합원 분담금으로 돌아옵니다. 최근 서울 주요 단지에서는 사업 초기 수천만원으로 예상됐던 분담금이 관리처분 단계에서 수억원대로 뛴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입주권 매수를 검토한다면, 시공사 선정과 관리처분계획 인가 사이 구간이 가장 변수가 큰 구간입니다. 정비구역 지정 뉴스는 기대감을 만들지만, 분담금을 확정하는 것은 결국 공사비입니다. 8월 31일 두 건의 유찰은 그 공사비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는 신호로 읽는 편이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