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용산구 보광동주민센터 옥상에 서울시 행정2부시장과 25개 자치구 관계자들이 모였습니다. 발밑으로는 한남3구역 철거 현장이 내려다보였습니다. 서울시가 정비사업 공정 총괄 책임자를 건축기획관에서 부시장급으로 격상한 뒤 두 번째로 연 '특별 공정촉진회의'였습니다. 회의를 관통하는 숫자는 간단합니다. 올해 착공 목표 3만 호, 8월 현재 약 1만5000호. 남은 넉 달에 나머지 절반을 채워야 합니다.
인허가는 실제로 빨라졌습니다
먼저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 합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주택공급 촉진방안' 이후 17차례 공정촉진회의를 열며 모든 정비구역을 세 등급으로 나눠 관리해 왔습니다. 계획보다 빠르면 A등급, 정상 추진이면 B등급, 일정이 밀리면 C등급입니다. 최근 15차례 점검 결과 C등급 구역은 20% 줄었고, A등급은 9%, B등급은 11% 늘었습니다.
속도가 붙은 사례도 있습니다. 강남구 은마아파트는 정비계획 변경 고시부터 사업시행인가까지 7개월이 걸렸고, 인가 처리 자체는 41일 만에 끝났습니다. 법정 처리 기간이 2개월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하입니다. 서울시는 2026~2028년 착공이 가능한 85개 구역, 8만5000가구를 '핵심 공급 전략사업'으로 묶어 착공 일정까지 공개했습니다. 2031년까지 31만 호 착공이라는 큰 목표의 앞단입니다.
그런데 멈춘 자리는 인허가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서류가 아니라 사람이 나가는 단계에서 생깁니다. 85개 구역 대부분은 이미 관리처분인가·이주·철거 구간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구간을 막고 있는 것이 이주비 대출입니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올해 이주를 앞둔 정비사업 구역 43곳 가운데 39곳, 약 3만1000가구가 대출 규제로 이주비 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91%입니다. 규제지역에서 1주택 조합원의 이주비 대출은 LTV 40%로 묶여 있고, 대출 한도액도 2억~6억 원으로 제한됩니다. 과거 70%였던 것과 비교하면 체감 폭이 큽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을 담보로 보느냐'였습니다. 지금까지 이주비 대출의 담보평가액은 철거되기 전 낡은 집, 즉 종전자산 기준이었습니다. 강북 재개발 구역의 노후 빌라나 단독주택은 종전자산 평가액 자체가 낮습니다. 여기에 40%를 곱하면 전세 보증금은커녕 월세 보증금도 빠듯한 금액이 나옵니다. 조합원 개인은 버틸 수 있지만, 이주가 안 되면 철거가 안 되고 철거가 안 되면 착공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대출 한도가 단지 전체의 공정을 세우는 구조입니다.
8월 31일, 비율이 아니라 기준이 바뀝니다
정부가 8월 13일 발표한 대책에 이 지점에 대한 답이 담겼습니다. 핵심은 오해하기 쉽습니다. LTV 40%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대신 그 40%를 곱하는 대상이 바뀝니다. 철거 전 종전자산이 아니라, 사업이 끝난 뒤 받게 될 신축주택의 가치 추산액, 즉 종후자산으로 담보평가 기준이 옮겨 갑니다. 시행일은 8월 31일입니다.
같은 비율이라도 모수가 달라지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종전자산과 종후자산의 격차가 큰 곳일수록 효과가 큽니다. 강남권처럼 종전자산이 이미 높게 잡히는 곳보다, 그동안 한도가 나오지 않아 이주가 지지부진했던 강북 정비사업장에서 변화가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주비만으로 부족한 경우를 위한 추가 이주비 대출 보증 상품도 신설됩니다. 다만 한국주택금융공사 보증으로 사업장별 예상 수요를 따져 한도를 산출하는 방식이며, 시행 목표는 2027년 1월입니다. 이번 달에 바뀌는 것과 내년에 바뀌는 것을 구분해서 보셔야 합니다. 정비사업 자금줄 전반으로 보면, PF 공적보증은 착공 물량이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2027년에 33조 원이 집중 공급됩니다.
무엇을 봐야 하나
첫째, 내 구역이 이주 단계인지, 그 앞인지입니다. 8월 31일 조치는 이주를 앞둔 구역에만 실질적 의미가 있습니다. 조합설립이나 사업시행인가 단계라면 당장의 변수는 아닙니다.
둘째, 종전자산과 종후자산의 격차입니다. 이번 변경의 수혜 폭은 이 격차가 결정합니다. 조합 총회 자료의 종전자산 평가액과 조합원 분양가를 나란히 놓고 보면 대략의 방향이 잡힙니다.
셋째, 한도가 늘어난다고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주비는 무상이 아니라 대출이고, 입주 후 상환해야 하는 돈입니다. 종후자산을 담보로 한도가 커진다는 것은 갚아야 할 원리금도 커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넷째, 착공 시점의 현실성입니다. 한남3구역은 8584세대 이주에 1년 8개월이 걸렸고, 종교시설 5곳 이전 약정까지 마친 뒤에야 철거에 들어갔습니다. 5970가구 규모로 2029년 입주가 예정돼 있습니다. 제도가 바뀌어도 이주와 철거에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울시는 올해 남은 1만5000호를 채우기 위해 매월 특별 공정촉진회의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회의가 늘어난다고 공정이 저절로 당겨지지는 않습니다. 이번 달 말 바뀌는 담보평가 기준이 실제로 39곳의 이주를 움직이는지, 그 결과가 하반기 착공 실적으로 나타나는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