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숫자는 용적률도, 분담금도 아닙니다. "올해 몇 가구까지 구역으로 지정해 줄 것인가"입니다. 이 상한에 걸리면 동의율이 아무리 높아도 순번을 기다려야 합니다. 지난 8월 27일 성남시가 행정안전부 주관 전국 시군구청장 국정설명회에서 정부에 공식 건의한 내용이 바로 이 상한을 없애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분당에 걸린 연차별 정비예정물량 1만2000호 제한이 대상입니다.
늘어난 건 총량, 묶인 건 한 도시였다
국토교통부는 1기 신도시 정비사업 구역지정 상한을 기존 2만6400가구에서 6만9600가구로 약 2.7배 늘렸습니다. 도시별로 보면 증가폭이 더 뚜렷합니다. 일산은 5000가구에서 2만4800가구로 약 5배, 중동은 4000가구에서 2만2200가구로 약 5.5배, 평촌은 3000가구에서 7200가구로 약 2.4배 확대됐습니다.
분당만 예외였습니다. 8000가구에서 8000가구로, 증가분이 없습니다. 총량이 4만3200가구 늘어나는 동안 분당 몫은 한 가구도 늘지 않은 셈입니다.
수요와 비교하면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2024년 분당 선도지구 공모에 접수된 물량은 약 5만9000가구였습니다. 정부 배정 기준 8000가구의 7.4배입니다. 특별정비예정구역 67곳 가운데 약 70%가 신청했고, 신청 단지의 평균 동의율은 90%를 넘었습니다. 주민 의사가 부족해서 사업이 안 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부가 든 이유는 '이주대책'이었다
국토부가 분당을 동결한 명분은 이주 문제입니다. 분당은 선도지구 규모만 1만948가구로,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32가구)에 근접합니다. 이 규모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성남권 전세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1기 신도시 안에 대체 주택을 지을 만한 땅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오래된 지적입니다.
성남시의 반박은 타이밍에 관한 것입니다. 실제 주민이 집을 비우는 시점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인데, 그보다 몇 년 앞선 구역지정 단계에서 물량을 묶는 것은 수단과 목적이 어긋난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시는 "연간 인허가 물량제한을 폐지하고, 관리처분인가 단계에서 지자체와 국토부가 협의해 조절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정비기본계획 승인 권한을 대도시 시장에게 넘겨 달라는 요구도 함께 냈습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이번 조치를 두고 "합리적 근거 없이 분당만 차별하는 것"이라며 헌법상 기본권 침해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세 가지
첫째, 동의율보다 순번입니다. 물량 상한이 있는 도시에서는 동의율 90%를 넘긴 단지들끼리 한정된 자리를 두고 경쟁합니다. 매수를 검토 중이라면 해당 단지의 동의율만 볼 게 아니라, 그 도시의 연차별 물량과 이미 지정된 구역 수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성남시는 2026년 2차 특별정비구역 지정 예정물량을 1만2000호로 두고 단계별 추진 계획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주 시점이 곧 리스크 구간입니다. 선도지구는 2026년 이주를 시작해 2027년 착공하는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면 인근 전월세가 먼저 움직입니다. 실수요자라면 이주 개시 시점과 본인의 임대차 만기가 겹치는지, 투자자라면 이주비 대출 조건과 상환 시점을 미리 계산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주비는 조합이 빌려주는 돈이지, 주는 돈이 아닙니다.
셋째, 규제는 바뀔 수 있지만 '언제'가 관건입니다. 성남시의 건의는 아직 건의 단계입니다. 국토부가 받아들일지, 받아들인다면 몇 가구를 풀지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완화를 전제로 가격을 미리 지불하는 판단은 위험합니다. 확인할 시점은 노후계획도시 정비기본계획 변경 고시와 국토부의 연차별 물량 조정 발표입니다.
정비사업의 속도는 조합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도시 단위로 배정된 숫자가 먼저 있고, 그 안에서 순서가 정해집니다. 분당의 5만9000과 8000 사이의 간격은, 지금 재건축 시장에서 무엇이 진짜 병목인지를 보여 주는 숫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