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이 실거주 조합원 약 2100명에게 최대 20억원의 이주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안내했습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집입니다. 서울경제 집계를 보면 잠실 주요 7개 단지에 나와 있는 전세 매물은 528건이고, 이 가운데 가장 수요가 많은 전용 84㎡대는 310건에 그칩니다. 조합원 2100가구가 한꺼번에 움직일 경우 잠실 인근만으로는 받아낼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추석을 앞두고 강남 재건축 조합원들 사이에서 "20억 들고 어디로 가느냐"는 말이 나온 이유입니다.
6억에 14억을 얹는 구조
이주비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먼저 기본 이주비는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한도에 묶여 최대 6억원입니다. 여기에 시공사가 보증을 서는 추가 이주비가 붙습니다. 종전자산평가액의 LTV 100% 범위 안에서, 실제로 계약한 임차보증금을 한도로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종전자산이 40억원인 조합원이 보증금 20억원짜리 전셋집을 구했다면, 6억원에 14억원을 더해 보증금 전액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짜 돈은 아닙니다. 서울경제는 추가 이주비 금리가 기본 이주비보다 1%포인트 이상 높다고 전했습니다. 20억원 전세를 전부 이주비로 해결하면 몇 년간 이자 부담이 적지 않고, 이 비용은 결국 조합원 개인이 지거나 사업비에 반영됩니다.
이런 조건은 수주 경쟁이 만든 결과이기도 합니다. 압구정5구역(현대건설)과 신반포19·25차(삼성물산)는 LTV 100%를, 개포우성7차는 LTV 150%에 추가 조건까지 제시했습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이 이주비 조건을 우선순위에 두고 요구하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LTV 150% 수준까지 넉넉하게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전셋값은 이미 반응했습니다
실제 이주는 아직 먼 이야기입니다. 잠실주공5단지는 올해 7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았고(최고 65층, 약 6411가구 계획), 연말 관리처분 총회를 거쳐 2027년 인가를 받은 뒤 내년 3분기 이후 이주를 시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도 주변 전세 시장은 먼저 움직이고 있습니다. 시대일보에 따르면 잠실엘스 전용 84㎡ 전세는 8월 말 11억7600만원에서 9월 초 14억원, 9월 10일 15억원으로 한 달 새 3억원 넘게 올랐습니다. 잠실르엘 84㎡는 18억원대, 잠실래미안아이파크는 14억~16억원 수준입니다.
이주비가 넉넉하면 조합원은 가격을 크게 따지지 않고 생활권 안의 집을 찾게 됩니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이주비가 부족해서 못 들어가는 상황보다 그 수요를 흡수할 물량이 남아 있느냐가 문제"라고 짚었습니다.
잠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잠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은마아파트(4424가구)는 내년 초 관리처분 인가를 계획하고 있고, 개포주공6·7단지(1960가구)도 내년 중 이주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강남 우수 단지로 수요가 몰리면, 그 단지의 기존 세입자가 밀려나면서 외곽으로 연쇄 이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 공인중개업체 대표는 "연세가 있는 분들은 기본 이주비에 자금을 조금 보태 서울 외곽이나 경기 지역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자께서 보실 것은 세 가지입니다.
- 조합원이라면: 추가 이주비 금리와 상환 조건을 기본 이주비와 따로 확인하십시오. 20억원 한도는 '빌릴 수 있는 돈'이지 '받는 돈'이 아닙니다. - 잠실·대치 인근 세입자라면: 내년 계약 만기가 이주 시기(은마 상반기, 잠실5 3분기 이후)와 겹치는지 보시고, 갱신청구권 사용 여부를 미리 판단해 두십시오. - 투자자라면: 관리처분 총회 일정이 실제로 지켜지는지가 핵심입니다. 일정이 밀리면 이주 수요도 함께 뒤로 밀리고, 지금 오른 전셋값이 유지될지도 달라집니다.
김효선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전문위원의 말처럼 "매매시장에 대한 금융 규제가 강화될수록 임대차시장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 강남 재건축 이주는 돈이 아니라 남아 있는 전셋집 수가 좌우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