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인왕산 자락에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개미마을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뒤 무허가 정착촌으로 생겨난 곳입니다. 서울시는 9월 22일 이 개미마을에 이웃한 문화마을과 옛 홍제4구역까지 세 곳을 하나로 묶은 '홍제동 9-81 일대 주택정비형 재개발 신속통합기획'을 확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상지는 13만4565㎡이고, 최고 30층 약 2520가구 규모의 단지로 계획됐습니다. 각자 따로 추진하다 번번이 멈췄던 세 마을이 한 구역으로 합쳐 다시 출발하는 셈입니다.
따로 가면 무산됐던 이유
세 마을은 2006년 무렵부터 여러 방식으로 정비를 시도했습니다. 개미마을은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된 뒤 민간 개발과 공공재개발을 모두 검토했지만 사업이 멈췄습니다. 문화마을은 공공재개발 대상지에서 빠졌고, 옛 홍제4구역은 재개발예정구역에서 해제됐습니다.
서울시는 무산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째는 인왕산 경관 보호 규제입니다. 둘째, 개발제한구역 해제지역은 용도지역을 올리기가 제한됩니다. 셋째, 이 두 규제 때문에 사업성이 낮았습니다. 여기에 최대 105m에 이르는 지형 고저차가 더해집니다. 땅을 깎고 메우는 데만 공사비가 크게 드는 구조였습니다.
이번 계획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7층 이하 제1·2종 일반주거지역이던 주거지를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올렸고, 용적률은 최대 275.6%입니다. 절토·성토를 최소화해 원래 지형을 살리고, 고저차는 데크 구조로 커뮤니티 시설과 외부 공간을 배치해 흡수하도록 했습니다. 층수는 인왕산 쪽이 20층 안팎, 내부순환로 쪽이 30층입니다. 폭 20m의 조망 통로 두 곳으로 산 능선을 가리지 않게 했습니다. 경관 규제를 피하지 않고 설계 안에서 소화해 층수와 용적률을 확보한 구조입니다.
하나로 묶으면 무엇이 달라지나
통합으로 얻는 가장 큰 이점은 기반시설입니다. 작은 구역 셋이 각자 도로와 공원을 부담하면 가구당 비용이 커집니다. 한 구역이 되면 진입로와 공원을 함께 계획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내부순환로 아래 공공부지를 편입해 세검정로 방향으로 진입로를 새로 내고, 내부순환로 교통과 단지 교통을 분리하기로 했습니다. 훼손된 인왕산 사면 약 3만㎡는 공원으로 복원합니다. 버스 노선과 하수 시설이 지나는 세검정로4길은 주민 생활 동선으로 유지합니다.
주민 의견도 비교적 많이 반영됐습니다. 서울시는 현장 방문과 간담회를 포함해 아홉 차례 주민 소통을 거쳤고, 통합 개발·용적률 상향·교통 개선·복합 공공시설 요구를 계획에 담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확정으로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대상 314곳 가운데 201곳(약 64%)의 기획이 끝났습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것
기대와 별개로 확인할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첫째, 지금은 '기획 확정' 단계입니다. 신속통합기획은 정비계획의 밑그림입니다. 이후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원회·조합 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를 차례로 거쳐야 합니다. 2520가구와 30층은 앞으로 심의 과정에서 조정될 수 있는 숫자입니다.
둘째, 이해관계가 다른 세 마을이 한 조합이 됩니다. 무허가 정착촌에서 출발한 개미마을과 기존 주거지인 문화마을·옛 홍제4구역은 토지·건물 소유 형태가 다를 가능성이 큽니다. 권리가액을 산정하거나 분양 자격을 정할 때 이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통합은 사업성을 높이지만, 동의율 확보와 조합 내부 합의라는 새 과제도 함께 가져옵니다.
셋째, 사업성은 아직 숫자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용적률 275.6%는 종전보다 크게 오른 수치지만, 105m 고저차와 데크 구조, 공원 복원 비용은 일반 평지 재개발보다 공사비를 끌어올리는 요인입니다. 공사비가 계속 오르는 시기인 만큼 추정 분담금이 나오기 전에는 수익성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넷째, 지분을 사려는 분은 권리 요건부터 확인하셔야 합니다. 권리산정기준일, 토지거래허가 여부, 무허가 건축물 소유자가 분양 자격을 인정받는지에 따라 같은 가격을 주고 사도 입주권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서대문구청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서 공고를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홍제동 9-81 일대는 규제와 지형 때문에 20년 가까이 멈춰 있던 곳입니다. 이번 계획으로 무엇이 막혀 있었는지는 대부분 정리됐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마을이 한 조합으로 합의에 이르는 속도와, 분담금이라는 계산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