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부터 전국 법원 경매법정에서 쓰는 '기일입찰표'의 양식이 바뀝니다. 법원행정처는 10월 30일 입찰가격 기재란을 손본 새 양식을 내놓았습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올해 6월 서울남부지법에서 나온 낙찰입니다. 영등포구 도림동 영등포아트자이 전용 144㎡는 감정가가 18억8000만 원이었고, 4월에 한 번 유찰돼 최저가가 15억400만 원까지 내려간 상태였습니다. 이 물건이 172억9600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낙찰가율은 920%였고, 2순위 응찰가는 18억5004만 원이었습니다. 업계는 낙찰자가 17억2960만 원을 쓰려다 '0'을 하나 더 붙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0 하나가 1억5000만 원이 되는 구조
경매에 참여하려면 최저매각가격의 10%를 입찰보증금으로 내야 합니다. 이 사건의 보증금은 약 1억5040만 원이었습니다. 낙찰자는 나흘 뒤 매각불허가를 신청하고 탄원서도 냈습니다. 하지만 입찰표를 잘못 쓴 것은 법이 정한 불허가 사유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결국 낙찰자에게 남는 선택은 둘입니다. 시세의 열 배 가까운 대금을 내거나, 대금을 포기하고 보증금을 잃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닙니다. 2020년에는 9억 원대 토지가 90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올해 5월에도 구로구의 전용 84㎡ 아파트가 감정가의 884%인 66억 원에 팔렸습니다. 수도권 인기 단지에서 감정가를 넘겨 쓰는 경쟁이 잦아지면서 적어야 할 숫자도 커졌고, 실수가 끼어들 여지도 함께 늘었습니다.
손해는 낙찰자 혼자 지지 않습니다
이번 개선은 실수한 사람만 구제하려는 조치가 아닙니다. 경매에는 최고가매수인이 대금을 내지 않을 때를 대비한 차순위매수신고 제도가 있습니다. 2순위 응찰자가 대신 매수할 기회를 얻는 제도입니다. 다만 2순위 응찰가가 '최고가에서 보증금을 뺀 금액'을 넘어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그 문턱이 약 171억 원이었습니다. 18억 원대를 써낸 정상 응찰자는 처음부터 차순위 신고를 할 수 없었습니다.
대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법원은 물건을 다시 매각에 부칩니다. 기일을 새로 잡는 만큼 시간이 걸리고, 그동안 채권자와 임차인의 배당도 늦어집니다. 재매각 물건은 보증금을 최저가의 20~30%로 올리는 경우가 많아, 다음 입찰자의 자금 부담도 커집니다. 실수 하나가 이해관계인 전체의 일정을 미루는 셈입니다.
무엇이 바뀌나
- 배치: 입찰가격 칸과 보증금액 칸을 좌우가 아니라 위아래로 놓고, 숫자 칸을 넓혔습니다. 두 금액의 자릿수를 위아래로 맞대어 볼 수 있습니다. - 경고 문구: 입찰가격 칸 바로 아래에 "입찰가격에 0을 한 번 더 기재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바르게 쓴 예시와 0을 잘못 덧붙인 예시도 함께 실었습니다. - 주의사항 정리: 뉴스1 보도에 따르면 뒷면 주의사항은 11개에서 6개로 줄었습니다.
입찰자가 챙길 것
양식이 바뀌어도 기재 책임은 여전히 입찰자에게 있습니다. 다음 네 가지를 습관으로 만드시길 권합니다.
1. 입찰가는 집에서 정하고 오십시오. 법정 분위기에 휩쓸려 즉석에서 금액을 고치는 일이 사고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지지옥션도 입찰표를 미리 작성해 가라고 조언합니다. 2. 자릿수를 대조하십시오. 보증금은 최저가의 10%입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입찰가는 보통 보증금보다 한 자리 깁니다. 두 자리 이상 길다면 최저가의 10배 이상을 쓴 것이니 반드시 다시 확인하십시오. 새 양식은 이 대조가 쉽도록 짜였습니다. 3. 틀리면 새 용지에 쓰십시오. 입찰가격은 고쳐 쓸 수 없습니다. 줄을 긋고 덧쓰면 무효가 될 수 있으니 새 용지를 받아야 합니다. 4. 상한선을 미리 정하십시오. 경쟁이 붙을수록 '조금만 더'가 반복됩니다. 시세와 대출 한도를 기준으로 정한 상한선은 실수와 과열을 함께 막아 줍니다.
경매는 권리분석과 시세 조사에 몇 주를 들이고도 마지막 숫자 한 줄로 결과가 갈리는 시장입니다. 11월 첫 주부터 법정에서 받게 될 새 입찰표는 '마지막 한 칸까지 확인하라'는 당부로 읽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