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법원, 같은 날 열린 경매장인데 결과가 정반대입니다. 지지옥션이 9월 15일 내놓은 8월 경매동향보고서를 보면, 감정가 30억원을 넘는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90.9%였습니다. 올해 1월 125.3%에서 5월 109.7%, 7월 90.0%를 거쳐 여덟 달 만에 34%포인트 넘게 빠진 수치입니다. 반면 같은 달 서울 중랑구는 115.2%, 노원구는 102.8%였고, 동대문·중랑 일부 물건에는 16~17명이 붙어 감정가의 128~132%에 낙찰됐습니다. 경매장이 식은 게 아니라, 비싼 물건만 식었습니다.
두 번 유찰된 여의도, 세 번 만에 팔린 성수
숫자보다 사례가 분명합니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삼부아파트 전용 146.7㎡는 7월에 감정가 50억8300만원으로 처음 나왔지만 응찰자가 없었습니다. 최저가가 40억6640만원으로 내려간 2회차에서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3회차 최저가는 32억5312만원까지 떨어졌습니다. 감정가의 64% 수준입니다.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 전용 152.2㎡도 감정가 73억9000만원으로 시작해 두 차례 유찰된 뒤 세 번째에 58억7300만원, 낙찰가율 79.5%에 주인을 찾았습니다. 두 물건 모두 "아무도 원하지 않는 집"이 아닙니다. 서울 한복판의 대형 평형, 평소라면 응찰자가 몰렸을 물건입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업계는 정부 세제개편안 이후 고가 주택에 대한 보수적 입찰 기조를 공통적으로 지목합니다. 보유세·취득세 부담이 어떻게 확정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낙찰 후 되돌릴 수 없는 경매 입찰가를 높게 써낼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고가 구간은 잔금 대출 한도가 촘촘합니다. 감정가가 높을수록 자기자본 비중이 커지고, 그만큼 입찰가는 더 짜집니다.
감정가는 과거의 가격입니다
이번 통계에서 실수요자가 가져가야 할 핵심은 '낙찰가율 90%'라는 숫자 자체가 아닙니다. 분모인 감정가가 언제 매겨졌는가입니다.
법원 감정평가는 보통 경매개시 직후에 이뤄지고, 첫 매각기일까지 6개월 안팎이 걸립니다. 지금 입찰하는 물건의 감정가는 반년 전 시세인 셈입니다. 시장이 오르던 구간에서는 감정가가 낮게 보여 낙찰가율이 120%, 130%로 찍히고, 시장이 꺾이는 구간에서는 감정가가 높게 남아 낙찰가율이 80%대로 떨어집니다. 중랑구의 132%와 여의도의 64%는 지역 인기 차이만이 아니라, 두 구간이 서로 다른 시간대의 가격표를 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낙찰가율은 언제나 '지금 그 단지의 실거래가'와 짝을 지어 봐야 합니다. 낙찰가율 90%라도 감정가가 현 시세보다 높으면 비싸게 사는 것이고, 115%라도 감정가가 낮게 매겨졌다면 시세보다 싸게 사는 경우가 생깁니다.
실수요자가 봐야 할 세 가지
첫째, 유찰 횟수와 저감 구조입니다. 서울중앙지법 등 수도권 대부분은 유찰 시 최저가를 20%씩 낮춥니다. 두 번 유찰이면 감정가의 64%가 최저가가 됩니다. 삼부아파트의 32억5312만원이 그 숫자입니다. 다만 저감은 '싸진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안 샀다'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왜 안 샀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 응찰자 수입니다. 낙찰가율보다 시장 체온을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응찰자 1~2명에 낙찰가율이 높다면 특수한 사정(유치권, 선순위 임차인, 지분 물건)이 낀 경우가 많고, 16~17명이 붙었다면 권리관계는 깨끗하되 경쟁으로 가격이 올라간 물건입니다. 전국 아파트 평균 응찰자는 8월에도 5.3명이었습니다.
셋째, 가격대를 나눠 보는 습관입니다. 8월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 84.7%, 서울 97.0%라는 평균은 지금 시장에서 거의 정보값이 없습니다. 30억 초과는 90%대, 중저가는 110~130%대로 갈라져 있으니, 평균은 두 시장을 섞어 지워버립니다. 본인이 노리는 가격대의 지표만 따로 떼어 보십시오.
지금이 기회인지 판단하려면
고가 구간의 약세를 "강남 급매를 경매로 줍는 시기"로 읽는 시각이 있습니다. 절반만 맞습니다. 세제 개편의 최종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보유 비용의 상단이 열려 있고, 그 불확실성이 지금 가격에 이미 반영돼 있습니다. 낙찰 후 세 부담이 예상보다 커져도 물릴 수 없다는 점이 경매의 구조적 약점입니다.
반대로 중저가 구간은 경쟁이 과열돼 감정가의 130%까지 올라가 있습니다. 이 가격대는 '싸게 산다'는 경매의 전제가 이미 무너진 지점입니다. 낙찰 직후 인근 실거래가와 비교해 차익이 남는지, 명도 비용과 취득세·수리비를 더하고도 남는지 따져야 합니다.
경매장은 지금 두 개의 시장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어느 쪽에 서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이번 달 통계를 읽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