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에 지어진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재건축 시공사를 정했습니다. 사업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은 10월 16일 토지등소유자 전체회의에서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뽑는 안건을 가결했습니다. 사흘 전인 13일에는 영등포구에서 사업시행계획인가도 받았습니다. 숫자만 보면 순조롭습니다. 다만 이번 선정은 경쟁입찰이 두 차례 무산된 뒤 수의계약으로 이뤄졌습니다. 3.3㎡당 약 1150만 원인 예정 공사비는 건설사끼리 경쟁해서 정해진 값이 아닙니다. 이 차이가 앞으로 소유자 분담금에 어떻게 이어질지 짚어 보겠습니다.
일곱 곳이 왔는데 입찰서는 한 장이었습니다
뉴스웨이 보도를 보면 현장설명회에는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 금호건설, 호반건설, 제일건설 등 7개사가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8월 첫 입찰에 서류를 낸 곳은 삼성물산뿐이었습니다. 재입찰 현장설명회에도 삼성물산만 나와 다시 유찰됐습니다. 이후 정비사업위원회가 삼성물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했고, 16일 표결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사업 규모는 이렇습니다. 기존 24개 동 1584가구를 지하 6층~지상 최고 59층, 21개 동, 2491가구로 다시 짓습니다. 907가구가 늘어납니다. 용적률은 399.72%이고, 입찰 당시 예정 공사비는 약 2조1616억 원입니다. 여의도에서 신속통합기획을 처음 적용한 사업지이기도 합니다.
경쟁이 붙지 않은 이유를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흐름은 보입니다. 삼성물산은 같은 여의도에서 이미 대교아파트와 목화아파트 시공권을 땄고, 올해 정비사업 수주액이 시범을 포함해 9조 원대 중반으로 올라섰습니다. 다른 건설사들은 승산이 낮은 곳에 입찰 비용을 쓰기보다 될 만한 곳을 골라 들어가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조합이 시공사를 고르던 시장에서 건설사가 사업장을 고르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수의계약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협상력이 문제입니다
경쟁입찰이 두 번 유찰되면 수의계약으로 넘어가는 것은 법이 정한 정상 절차입니다. 위법도 아니고, 사업이 늦어지는 것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범아파트는 사업시행인가와 시공사 선정을 같은 주에 마쳤습니다.
문제는 협상력입니다. 경쟁입찰에서는 건설사들이 공사비를 깎거나 이주비 대여, 사업비 조달 같은 조건을 더 얹으며 서로 다툽니다. 수의계약에서는 그런 압력이 없습니다. 이번에 확정된 것은 시공사이고, 세부 공사비와 계약 조건은 앞으로 맺을 본계약에서 정해집니다. 소유자 입장에서 진짜 협상은 지금부터인 셈입니다.
신탁 방식이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시범아파트는 2017년부터 조합 대신 한국자산신탁이 사업시행자로 나서 왔습니다. 그래서 조합 총회 대신 토지등소유자 전체회의가 의결하고, 실무는 소유자 대표로 꾸린 정비사업위원회와 신탁사가 맡습니다. 전문성과 자금 조달은 장점이지만, 시공사와 협상하는 주체가 신탁사라는 점, 그리고 신탁 수수료가 사업비에 들어간다는 점은 소유자가 따로 챙겨야 합니다.
소유자와 매수 대기자가 볼 것
첫째, 본계약의 공사비 조정 조항입니다. 3.3㎡당 1150만 원은 출발점일 뿐입니다. 착공까지 몇 년이 남았으니 물가 연동을 어떤 지수로, 언제부터 반영하는지가 최종 공사비를 좌우합니다. 착공 전 증액 상한이나 설계 변경 때 단가를 어떻게 매기는지 같은 문구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내년 관리처분계획입니다. 한국자산신탁은 내년에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뒤 이주와 철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소유자별 분담금과 비례율이 처음 숫자로 나오는 단계입니다. 늘어나는 907가구의 일반분양 수입으로 공사비를 얼마나 메울 수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셋째, 증액이 생겼을 때 검증 장치입니다. 공사비가 일정 기준 이상 오르면 한국부동산원 같은 공공기관의 공사비 검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경쟁 없이 정한 계약일수록 이 장치를 제때 쓰는지가 중요합니다.
넷째, 매수를 검토하신다면 거래 제약부터 확인하셔야 합니다. 여의도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고, 투기과열지구 재건축은 조합원 지위 양도가 원칙적으로 막혀 있습니다. 신탁 방식은 이 제한이 '사업시행자 지정' 시점부터 적용되니, 매도인이 예외 요건에 해당하는지 계약 전에 꼭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사업 속도를 얻었고, 앞으로 협상에서 이를 증명해야 합니다. 경쟁 없이 정한 공사비가 적정했는지는 내년 관리처분 때 분담금으로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