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사라져갈 것"이라던 말이, 통계로 먼저 도착했습니다. 올해 서울 아파트에서 새로 맺어진 임대차 계약 5만1196건 가운데 월세(반전세 포함)가 2만7719건, 54.1%였습니다. 3년 전만 해도 열 건 중 넷이 채 안 되던 월세가 이제 절반을 넘겼습니다. 세입자에게 '전세냐 월세냐'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라, 시장이 밀어붙이는 결론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숫자가 말하는 '역전'
가장 눈에 띄는 건 매물 자체가 마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지난해 6월 약 2만5000건에서 올해 5월 1만6000건 아래로 1년 새 3분의 1 넘게 줄었습니다. 물건이 귀해지면 값이 오릅니다. 전세가격은 1~4월 누적 2.89% 올라 지난해 같은 기간의 약 6배 속도로 뛰었고, 월세가격지수는 4월 105.5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수급 지표는 더 선명합니다. 6월 넷째 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25.9로, 2021년 1월 이후 약 5년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집을 구하려는 사람이 내놓은 물건보다 많다'는 뜻입니다. 신축 단지에서는 쏠림이 더 심해서, 최근 입주한 서울 주요 단지의 월세 계약 비중은 평균 60%에 달했습니다. 잔금과 대출을 한꺼번에 감당하기 어려운 입주장에서 전세 대신 월세를 택하는 흐름이 뚜렷합니다.
왜 지금, 전세가 밀려나나
배경엔 세 가지 힘이 겹칩니다. 첫째는 대출규제입니다. 6·27 대책으로 전세대출 보증 비율이 90%에서 80%로 낮아졌고,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막혔습니다. 전세를 끼고 잔금을 치르는 '갭' 구조가 좁아지자, 집주인은 전세를 거둬들이고 세입자는 전세금을 마련하기가 빠듯해졌습니다.
둘째는 집주인의 셈법입니다. 예금금리가 여전히 3% 안팎인 상황에서, 전세보증금을 굴려 얻는 이자보다 매달 들어오는 월세가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전세를 반전세·월세로 돌리려는 유인이 커진 것이죠.
셋째는 공급 공백입니다. 2020~2021년 임대차 3법 시행 직후의 전세난과 지금 국면이 닮았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당시엔 제도가, 지금은 대출과 입주 물량 감소가 매물을 묶고 있습니다. 원인은 달라도 '물건이 없어 값이 뛰는' 결과는 같습니다.
세입자와 투자자가 봐야 할 것
세입자라면 월세 전환에 따른 실부담을 먼저 계산해야 합니다.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되는 전월세전환율(현재 법정 상한은 기준금리+2%)이 은행 전세대출 금리보다 높다면, 무리해서라도 전세대출을 받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출 한도가 막혀 있다면 월세가 현실적 선택입니다. 재계약 시점이 다가온다면 갱신요구권과 5% 상한 룰을 미리 챙기시길 권합니다.
투자자·집주인이라면 전세가율의 방향을 주시해야 합니다. 전세가가 매매가를 밀어올리는 국면에서는 갭이 좁아지며 소액 투자 여지가 생기지만, 지금의 전세 강세는 '수요가 좋아서'가 아니라 '공급이 막혀서' 나타나는 성격이 강합니다.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거나 입주 물량이 풀리면 방향이 바뀔 수 있으니, 전세가 상승을 매매가 상승 신호로 곧장 읽는 것은 위험합니다.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였습니다. 그 제도가 규제와 금리, 공급이라는 세 축에 눌려 조용히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습니다. 당장 이달의 시세보다, '전세 매물이 얼마나 나오는지'와 '월세 전환 비용이 얼마인지' — 이 두 숫자를 계약서 앞에서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