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기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숫자가 하나 있습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전세자금보증 공급량입니다. 올해 5월 한 달 보증 건수는 5만6223건. 7년 8개월 만의 최저치입니다. 올해 1~5월 누적으로도 31만7297건에 그쳐, 1년 전보다 3만6000여 건, 2년 전보다는 약 9만 건(22%) 줄었습니다. 이 숫자가 줄었다는 것은 단순히 통계 하나가 내려앉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세로 집을 구하려는 사람이 공적 보증의 우산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보증이 줄었나 — 물량과 대출, 그리고 기준
원인은 세 갈래로 겹칩니다.
첫째, 전세 매물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수도권 상당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신규 전세 물량이 시장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계약이 없으면 보증도 없습니다.
둘째, 전세대출이 조여졌습니다. HF 관계자는 보증 급감의 가장 큰 원인으로 "가계부채 관리 기조가 강화되며 은행 전세대출 공급이 줄어든 것"을 꼽았습니다. 지난 7월 기준금리가 2.75%로 오른 것도 같은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전세대출은 대부분 변동형이라 금리 인상이 곧바로 월 부담으로 옮겨옵니다.
셋째, 보증 기준이 높아졌습니다. 이달 13일부터 전세보증보험의 부채비율 요건이 기존 100% 이내에서 90% 이내로 내려갔고, 공시가격 적용비율도 주택 유형과 가격대에 따라 125~190% 수준으로 세분화됐습니다. 여기에 기존의 '126% 룰'(선순위 채권+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26% 이하)까지 얹히면, 연립·다세대는 상당수가 요건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공시가격이 시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비아파트일수록 불리한 구조입니다.
밀려난 수요는 어디로 갔나 — 49.8%라는 분기점
답은 월세입니다. 지난 4월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 비중은 49.8%, 전세는 50.2%였습니다. 격차는 단 0.4%포인트. 10년 전인 2017년 4월에는 전세 65.5% 대 월세 34.4%로 31.3%포인트 차이가 났으니, 10년 만에 사실상 동률까지 온 셈입니다.
거래량 자체도 줄었습니다.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는 2023년 4월 1만3979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 4월 8613건으로 3년 만에 38% 감소했습니다. 순수 월세보다 보증금과 월세를 섞는 '준월세' 비중은 2022년 51%에서 2025년 55%까지 매년 올랐고, 연립·다세대는 이미 월세 비중이 61.3%로 전세(38.7%)를 크게 앞질렀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번 보증 기준 강화가 이 흐름을 가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도가 줄면 임대인은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올려 계약 구조를 맞추려 합니다. 제도가 보증금을 억제할수록, 실제로는 월세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셈입니다.
실수요자가 봐야 할 것
첫째, 계약 전 보증 가능 여부를 먼저 확인하십시오. 예전에는 계약하고 나서 보증을 신청했지만, 지금은 순서가 바뀌어야 합니다. 선순위 채권과 공시가격을 먼저 확인하고 부채비율 90% 요건을 통과하는지 따져본 뒤 계약서를 쓰는 것이 안전합니다. 특히 연립·다세대는 이 확인 없이는 위험합니다.
둘째, 전세와 월세의 실질 비용을 다시 계산하십시오. 전세대출 금리가 오른 상황에서는 전세보증금 대출이자와 월세가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보증 사각지대에 놓인 전세라면,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택하는 편이 위험 대비 비용에서 나을 수 있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비교할 대목입니다.
셋째, 매수를 검토 중이라면 임대 수요의 구조 변화를 감안하십시오.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레버리지는 규제와 보증 축소로 좁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월세 수요는 늘고 있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전세를 끼고 접근하는 방식과 월세를 놓는 방식의 수익 구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전세는 한국 주택시장의 오래된 안전판이자 사다리였습니다. 그 사다리의 발판 하나가 얇아지고 있습니다. 공적 보증 7년 8개월 만의 최저치는 단기 통계의 흔들림이 아니라, 임대차 시장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나온 신호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다음 확인 지점은 하반기 월세 비중이 50%를 넘어서는지, 그리고 강화된 보증 기준이 비아파트 임대차에 어떤 실제 계약 구조를 만들어내는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