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뒤, 경매는 '갭투자가 가능한 유일한 통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경매로 산 아파트는 토허제의 2년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등기부를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습니다. 조선일보가 알스퀘어 데이터허브로 올해 1~8월 서울에서 낙찰되고 소유권 이전까지 끝난 아파트 366건을 분석했습니다. 낙찰자의 91.5%가 수도권 거주자였고, 69%는 낙찰 뒤 금융권 대출을 받았습니다. 서울 경매 아파트는 대부분 실수요자에게 돌아간 셈입니다.
지방 원정 갭투자는 10%도 안 됐습니다
낙찰자 주소지는 서울이 261명(71.3%)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경기 62명(16.9%), 인천 12명(3.3%)이 뒤를 이었습니다. 지방 거주자는 10%가 채 안 됩니다.
대출 기록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366건 가운데 253건(69%)에 경매 이후 근저당이 설정됐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서울에서 새로 산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6개월 안에 전입해야 합니다. 대출을 받았다면 들어가 살 계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전세를 끼고 사두려는 투자자라면 대출 없이 잔금을 치러야 실거주 의무를 피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근저당 설정이 곧 실거주 확인은 아닙니다. 다만 '경매는 투자자 몫'이라는 통념과는 거리가 먼 숫자입니다. 과거 '선수들의 리그'로 불리던 경매장에 매매시장에서 집을 구하지 못한 실수요자가 들어온 것입니다.
대출은 10명 중 6명이 2금융권에서 받았습니다
이번 분석에서 더 눈여겨볼 대목은 돈이 어디서 나왔느냐입니다. 근저당이 잡힌 253건에 설정된 근저당은 모두 274건이었습니다. 그중 2금융권이 173건(63.1%) 으로 가장 많았고, 시중은행 등 1금융권은 74건(27%)에 그쳤습니다. 2금융권은 새마을금고, 지역 농·수·축협, 보험사, 저축은행 등을 말합니다.
2금융권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한도가 50%로 은행(40%)보다 넉넉합니다. 신용점수가 낮아도 대출이 나옵니다. 대신 금리가 더 높습니다. 은행들이 연간 대출 총량과 지점별 한도를 줄이자, 낙찰자들이 한도가 나오는 곳을 찾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도 "대출이 더 많이 나오는 2금융권으로 수요자들이 몰려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수요자에게는 부담이 되는 구조입니다. 낙찰가는 시세에 가깝게 올라갔는데, 그 돈을 더 비싼 이자로 빌린 셈이기 때문입니다.
'경매 폭증'보다 '시세 경매'에 가깝습니다
최근 경매 증가를 집값 하락의 신호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수치는 다른 얘기를 합니다. 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1213건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900건보다 36.2% 줄었습니다. 지지옥션 기준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지난해 10월 102.3%로 100%를 넘은 뒤 올해 8월까지 97~107.8%에 머물렀습니다. 감정가 수준을 써내야 낙찰을 받는 시장입니다.
9월에는 온도차가 생겼습니다. 9월 셋째 주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89.3%로 3주 연속 100%를 밑돌았습니다. 끌어내린 쪽은 고가·대형 물건입니다. 광진구 207㎡와 송파구 143㎡가 각각 감정가의 83%대에 낙찰됐습니다. 반면 송파구의 한 85㎡에는 11명이 몰려 104.2%에 낙찰됐습니다. 8월 중랑구 낙찰가율은 115.2%였습니다. 대출 한도 안에서 살 수 있는 중저가 아파트에 실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경매로 내 집을 마련한다면, 이것부터 보세요
- 대출 계획은 입찰 전에 확정하세요. 경락잔금대출은 보통 낙찰가의 80%와 감정가의 70% 가운데 적은 금액까지 나옵니다. 은행 한도가 막히면 2금융권 금리로 계산해야 합니다. 월 상환액까지 미리 따져보세요. - 대출을 받으면 6개월 안에 전입해야 합니다. 기존 점유자 명도가 늦어지면 일정이 꼬일 수 있습니다. 점유자 현황을 반드시 확인하세요. - 할인은 감정가가 아니라 시세 기준으로 보세요. 낙찰가율 100% 안팎의 시장에서 '감정가보다 싸다'는 말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최근 실거래가와 비교해 입찰가를 정하세요. - 중저가 단지는 경쟁이 몰립니다. 응찰자가 10명을 넘는 물건은 시세에 가깝게 낙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한선을 정해두고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울 경매시장은 이제 투자자의 할인 매장보다 매매시장의 또 다른 입구에 가깝습니다. 입구가 달라도 따져볼 것은 같습니다. 얼마에 사는지, 그리고 그 돈을 어떤 금리로 빌리는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