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고가 난 빌라와 오피스텔이 경매에 나오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입찰자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대신 돌려준 뒤 그 집을 직접 낙찰하고, 손질해 공공임대 '든든전세'로 다시 내놓는 방식입니다. 이번 주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사업의 숫자가 처음 한꺼번에 공개됐습니다. 2024년 5월부터 2026년 9월까지 HUG가 사들인 주택은 8174호, 취득원가는 약 1조6253억 원입니다. 이 가운데 입주가 끝난 집은 1862호로 22.8%에 그쳤습니다(정희용 의원실 자료). 경매로 '팔린' 집과 실제로 사람이 '사는' 집 사이에 아직 큰 틈이 있다는 뜻입니다.
낙찰은 빨랐고 입주는 느렸습니다
단계별로 보면 어디서 막혔는지 드러납니다. 점유자를 내보내는 명도는 6158호(75.3%)까지 끝났지만, 하자보수를 마친 집은 3765호(46.1%)뿐입니다. 매입부터 첫 입주자 모집공고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2024년 133일, 2025년 267일, 올해 410일로 해마다 늘었습니다. 공고를 냈는데도 6개월 넘게 비어 있는 집이 278호이고, 재공고를 기다리는 집도 348호입니다. 의원실은 윗집 누수와 외벽·옥상 같은 공용부 하자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HUG는 사업 초기에는 명도가 빨리 끝나고 상태가 좋은 집부터 공급했기 때문에 처음 기간이 짧았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손이 덜 가는 집은 이미 거의 소진됐고, 지금 남은 물량은 손이 많이 가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매입 물량의 99.1%가 수도권에 있고, 연립·다세대가 53.1%, 오피스텔이 43.1%를 차지합니다. 아파트는 2.9%에 불과합니다.
회수액의 절반은 현금이 아니었습니다
돈의 흐름도 함께 봐야 합니다. 김은혜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HUG는 올해 8월까지 악성 임대인 2559명의 보증금 7조3866억 원을 대신 갚았습니다. 이 가운데 돌려받은 돈은 2조2625억 원인데, 그중 1조550억 원(46.6%)이 든든전세 자가낙찰 대금을 채권과 맞바꾼 상계 처리였습니다. 장부에서 채권이 '주택'으로 바뀐 것이지 현금이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상계를 뺀 현금성 회수는 최대 1조2075억 원으로 대신 갚은 돈의 16% 수준입니다. 아직 받지 못한 돈은 약 5조1241억 원(69.3%)으로 집계됐습니다.
결국 HUG가 낙찰한 집은 비어 있는 동안 회수된 돈이 아니라 관리비와 수선비가 드는 재고에 가깝습니다. 입주가 빨라져야 임대수익으로라도 회수가 시작됩니다. 국감에서 HUG 사장이 단계별 기간을 줄이고 장기 공실을 해소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입니다.
빌라 경매를 보는 분이 확인할 것
이 숫자는 수도권 빌라·오피스텔 경매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세 가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HUG가 늘 낙찰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지옥션 집계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HUG 관련 경매 낙찰 5672건 중 76.6%를 일반 응찰자가 가져갔습니다. HUG가 대항력을 포기하고 우선변제권만 행사하는 물건은 낙찰자가 기존 보증금을 떠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입지가 좋은 물건에는 일반 응찰자가 몰렸습니다. 다만 대항력 포기 여부는 물건마다 다르므로 매각물건명세서와 HUG 확약서를 반드시 직접 확인하셔야 합니다.
둘째, HUG도 '안 되는 집'을 겪고 있습니다. 공기업이 직접 수리해도 누수와 공용부 하자 때문에 1년 넘게 세입자를 못 구한다면, 개인 낙찰자에게는 그 부담이 더 큽니다. 같은 건물에 전세사고 세대가 여럿이면 관리 주체가 없어 공용부 보수가 늦어지기 쉽습니다. 감정가 대비 낙찰가율보다 현장 확인과 수선비 예산이 먼저입니다.
셋째, 사업 속도가 바뀔 수 있습니다. 미입주 재고가 6312호나 쌓인 상황이라 HUG가 자가낙찰 속도를 조절하거나 공급 방식을 손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해당 물건의 경쟁 구도와 유찰 횟수도 달라집니다. 연말까지 나올 HUG의 개선안을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8174호는 전세사기 피해를 공공이 떠안은 결과입니다. 그 집에 사람이 들어가야 회수도, 피해 복구도 시작됩니다. 경매 참여자라면 '누가 낙찰받느냐'에 더해 '낙찰 뒤 실제로 살 수 있는 집이냐'를 같은 무게로 따져보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