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의 첫 단추는 시공사도, 조합도 아닙니다. 정비구역 지정입니다. 이 도장이 찍혀야 추진위가 서고, 조합이 만들어지고, 감정평가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는 이 도장을 누가 찍을 것인가를 다시 정하는 법안이 올라가 있습니다. 8월 들어 정비업계 전문지들이 연일 사설과 만평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을 만큼, 현장의 온도는 올라간 상태입니다. 반대 국민동의청원은 5만 명을 넘겨 국회 상임위 심사 대상이 됐습니다.
무엇이 달라지나 — 지정권자가 하나 더 늘어난다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의 골자는 간단합니다. 정비구역 지정이 지체돼 사업 시행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하거나 우려되는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접 정비구역을 지정하거나 해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절차도 함께 담겼습니다.
지금은 정비구역 지정권이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 즉 광역 지자체장에게 있습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시·도지사와 장관이 중첩적으로 같은 권한을 갖게 됩니다. 지자체가 미적거리면 중앙정부가 대신 지정해 공급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입니다.
같은 흐름의 법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천준호 의원이 발의한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권한을 국토부 장관에게 넓히는 내용입니다. 정비구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재개발 투자자에게 가장 민감한 두 개의 선입니다. 그 선을 긋는 주체가 동시에 바뀌려 하는 셈입니다.
국토부도 "신중 검토"였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권한을 받게 되는 국토부가 오히려 제동을 걸었다는 점입니다. 국토부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신중 검토" — 실무적으로는 반대에 가까운 표현 — 의견을 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장관과 시·도지사가 중첩적으로 지정권을 행사하면 행정 혼선으로 오히려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역 지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 정비계획 변경, 사업시행계획인가 같은 사후 관리 단계가 줄줄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권한이 충돌하면 조합만 사이에 낀다는 우려입니다.
국토부는 대안으로 지방도시계획위원회 심의가 장기간 열리지 않을 경우 장관이 심의를 요청하고 일정을 협의하도록 하는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지정권을 가져오는 대신 재촉할 수단만 갖자는 절충안입니다.
서울시가 내민 숫자: 69일, 90%
서울시는 더 직접적으로 반박했습니다. 요지는 "병목이 있다는 전제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입니다. 서울시가 제시한 수치는 이렇습니다.
- 도시계획위원회 처리 기간: 평균 69일 이내, 가결률 90% 이상 - 통합심의: 31일 이내, 가결률 97% 이상 - 정비구역 지정 물량: 2012~2020년 연평균 12곳 → 2021년 이후 연평균 36곳(3배)
자치구 단위에서도 속도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강남구는 재건축 추진위원회 승인 기간을 법정 처리기한 30일에서 10일로 줄였고, 영등포구는 신속추진지원단을, 노원구는 구청장 직속 쾌속추진단을 가동했습니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지금 속도가 나는데 왜 지정권을 가져가느냐"는 것이고, 반대 청원 5만4800여 명의 정서도 여기에 가깝습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세 가지
첫째, 이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이고, 소관 부처인 국토부조차 신중론입니다. 지금 단계에서 "곧 국가가 지정한다"는 식의 매물 홍보가 나온다면 걸러 들으셔야 합니다.
둘째, 지정권이 늘어난다고 내 구역이 빨라지지는 않습니다. 정비사업의 실제 병목은 구역 지정 이후에 있습니다. 감정평가, 추정분담금, 관리처분계획인가 — 서울시가 별도로 평균 3년 걸린다고 인정하고 1년 9개월로 줄이겠다고 밝힌 구간이 여기입니다. 구역 지정 단계에서 몇 달을 아껴도, 관리처분 단계에서 1년이 밀리면 의미가 없습니다.
셋째, 정말 봐야 할 것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쪽입니다. 정비구역 지정은 이미 대부분 진행 중인 곳이 많지만, 토허구역은 지정 즉시 실거주 의무와 자금조달 요건이 붙어 거래 가능 여부 자체를 바꿉니다. 지정 주체가 장관으로 넓어지면 서울시 판단과 무관하게 규제선이 그어질 수 있습니다. 매수를 검토 중이시라면 계약 직전까지 해당 필지의 토허구역 지정 여부를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권한을 누가 갖느냐는 정치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원에게는 결국 내 사업이 몇 달 빨라지느냐 느려지느냐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법안의 향방보다, 내 구역이 지금 어느 단계에서 멈춰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시는 편이 실익이 큽니다.
> 출처: [하우징헤럴드](https://www.housingherald.co.kr/news/articleList.html), [뉴스핌](https://www.newspim.com/news/view/20260715001280), [헤럴드경제](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768227), [뉴데일리](https://biz.newdaily.co.kr/site/data/html/2026/06/12/2026061200087.html), [한국경제](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60839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