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한 달 동안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1253억원 늘었습니다. 8월에는 3조3319억원이 늘었으니, 한 달 사이에 증가 폭이 4%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같은 달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780조8340억원으로 1조2852억원 감소했습니다. 가계대출이 줄어든 것은 3월 이후 6개월 만입니다. 은행이 대출을 막아서 생긴 결과가 아닙니다. 금융당국은 오히려 대출 한도를 넓혀 둔 상태였습니다. 대출 문은 열려 있었는데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줄었다는 점에서 이번 숫자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은 넓어졌는데 들어오는 사람이 줄었습니다
파이낸셜뉴스 보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올해 은행권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를 1.5%에서 3.0%로 올렸습니다. 이에 따라 5대 은행의 연간 증가 한도도 4조3400억원에서 6조98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은행으로서는 대출을 더 내줄 수 있는 여건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9월 수요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면서 "한국은행이 7월과 8월 기준금리를 올려 소비자들이 관망세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준금리는 두 차례 인상을 거쳐 연 3.00%가 됐습니다. 9월 주담대 평균 금리는 연 4.66%로 넉 달 연속 올랐습니다. 대출 한도가 남아 있어도 이자 부담이 크면 실제로 돈을 빌리기는 어렵습니다.
항목별 숫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신용대출: 1조3415억원 감소(잔액 108조2303억원). 감소 폭은 1년 8개월 만에 가장 컸습니다. 5~7월 증시 활황 때 5조4000억원 넘게 늘었던 '빚투' 자금이 빠져나간 영향이 컸습니다. - 전세자금대출: 6903억원 감소(잔액 119조2980억원). 2년 6개월 만에 가장 크게 줄었습니다. - 주담대: 1253억원 증가(잔액 621조3983억원). 6개월째 늘었지만 증가 폭은 크게 줄었습니다. - 집단대출: 4551억원 증가(잔액 149조7521억원).
대출 통계는 거래량을 뒤따라옵니다
주담대 통계를 볼 때는 시차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담대는 보통 매매계약을 맺은 날이 아니라 잔금을 치르는 날 실행됩니다. 따라서 9월 대출 통계에는 7~8월에 맺은 계약이 주로 반영됩니다.
한국금융신문이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정리한 내용을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5월 8994건에서 8월 3473건(9월 28일 집계 기준)으로 61.4% 줄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매물은 늘었습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9월 24일 7만2400건으로 6월 1일보다 1만1374건(18.6%) 많았습니다. 팔려는 집은 늘었는데 사는 사람은 줄어든 상황입니다. 이번 주담대 증가 폭 축소는 이렇게 줄어든 거래가 시차를 두고 대출 통계에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거래가 크게 줄어든 8월 이후의 상황은 10월과 11월 대출 통계에 반영됩니다. 그렇다면 주담대 증가 폭이 앞으로 한두 달 더 작게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집단대출은 4551억원 늘었습니다. 신규 분양 단지의 중도금과 잔금 대출은 일반 매매 거래와 별개로 꾸준히 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수요자와 투자자가 봐야 할 세 가지
첫째, 이달 금통위 결과입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물가 상승 압력과 금융불균형 위험에 유의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수도권 집값과 가계대출이 계속 늘던 흐름이 9월에 처음 꺾였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추가 인상을 할지 한 번 쉬어 갈지가 대출 금리의 방향을 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았다면 금통위 직후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어떻게 조정하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전세대출이 줄어든 이유입니다. 서울 전셋값은 올해 크게 올랐고 전세 매물은 1년 사이 12% 넘게 줄었습니다. 그런데 전세대출은 2년 반 만에 가장 크게 감소했습니다. 이번 보도만으로는 원인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전세 물건 자체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 월세로 옮겨 간 수요가 늘었을 수도 있으며, 금리 부담 때문에 대출을 먼저 갚았을 수도 있습니다.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면 대출 증액보다 월세 일부 전환 조건을 함께 비교해 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셋째, 매물과 거래량의 차이입니다. 매물은 늘고 거래는 줄어든 상태가 이어지면 매도자가 가격을 낮추고 매수자는 기다리게 됩니다. 실제로 KB선도아파트50지수는 9월에 4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습니다. 실수요자에게는 협상할 여지가 생길 수 있는 시기입니다. 다만 대출 금리가 오르고 있으므로 매입가와 함께 월 상환액을 기준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다시 계산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9월 수치는 한 달치 자료입니다. 이것만으로 시장이 방향을 틀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대출 한도가 늘었는데도 대출이 줄었다는 점은 지금 시장에서 가장 큰 변수가 대출 규제보다 금리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10월 대출 통계와 금통위 결정이 함께 나오면 흐름을 더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