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원래 이사의 계절입니다. 추석 전후로 짐을 싸고, 아이 학교를 옮기고, 새 동네에 적응하는 일이 매년 이맘때 반복돼 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서울에서는 그 흐름이 눈에 띄게 멈췄습니다. 서울주택 정보마당 집계에 따르면 올해 9~11월 서울 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의 전·월세 예측물량은 4만 9212가구로, 2024년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적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5만 8317가구보다 15.6% 줄어든 수치입니다.
줄어든 것은 '전세'였습니다
전체 15.6% 감소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내부 구성입니다. 이 가운데 전세는 1만 7798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3만 1193가구에서 42.9% 급감했습니다. 반면 전체에서 전세를 뺀 월세 물량은 지난해 약 2만 7000가구에서 올해 약 3만 1000가구 수준으로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계산됩니다(전체 물량에서 전세를 차감한 값).
즉 이번 물량 감소는 "임대차 시장 전체가 얼어붙었다"기보다 전세가 월세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생긴 구멍에 가깝습니다. 전세를 찾는 세입자에게는 체감 낙폭이 15.6%가 아니라 42.9%라는 뜻입니다. 같은 이사철이라도 전세 세입자와 월세 세입자가 마주하는 시장의 온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왜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을까
물량이 줄어든 원인은 크게 둘입니다. 첫째, 가격입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5억원대 전용 59㎡ 아파트 전세는 최근 두 달 사이 6000만원가량 올랐습니다. 둘째, 대출입니다. 전세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올라간 보증금을 대출로 메우기 어려워졌습니다.
이 둘이 겹치면 세입자의 선택은 단순해집니다. 새집을 찾아 나가는 대신 계약갱신청구권으로 보증금 5%만 올려주고 눌러앉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분석한 직방 자료를 보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중 갱신계약 비중은 올해 1~8월 45.4%로 지난해 같은 기간 37.1%보다 8.3%포인트 높아졌고, 8월에는 51.7%까지 올라 신규 계약을 앞질렀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 갱신 중 상당수가 갱신청구권을 쓰지 않은 '합의갱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난달 기준 합의갱신 비중은 60.4%였습니다. 5% 상한을 포기하고 집주인이 부르는 값을 받아들이면서까지 그 집에 남겠다는 선택입니다. 갱신권이라는 카드를 아껴두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없을 만큼 대안이 없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멈춘 이사는 통계 밖에서도 확인됩니다. 경기 수원의 한 소형 이사업체 운영자는 "상반기에는 한 달에 15~20건씩 일감이 찼지만 최근에는 15건을 채우기도 버겁다"며 매출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주거 이동은 이사·인테리어·가전·중개 등 생활 산업을 함께 끌고 다니기 때문에, 이동이 멈추면 그 아래 업종부터 먼저 흔들립니다.
실수요자가 지금 봐야 할 것
첫째, 만기 6개월 전에 움직이십시오. 매물이 4만 9212가구뿐인 시장에서는 준비 기간이 곧 협상력입니다. 만기 두 달 전에 나서면 선택지가 사실상 사라집니다.
둘째, 갱신 제안을 받았다면 5%와 시세를 함께 계산하십시오. 합의갱신이 60%를 넘었다는 것은 집주인들이 갱신권 상한을 넘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갱신청구권은 한 번뿐인 권리이므로, 지금 쓸지 다음 계약에 쓸지 판단이 필요합니다.
셋째, '전세만' 고집하는 조건을 점검하십시오. 전세가 42.9% 줄고 월세가 늘어난 구조에서는, 반전세·월세 조합의 총비용이 대출이자를 포함한 전세보다 낮아지는 구간이 생깁니다. 보증금 차액을 예금에 넣었을 때의 이자와 월세를 직접 비교해 보시길 권합니다.
넷째, 이 지표는 매매시장의 선행 신호이기도 합니다. 전세가 귀해지고 갱신이 늘면 전셋값은 버티고, 전세가율이 올라가면 매매 수요가 자극됩니다. 전월세 물량은 임차인만의 통계가 아닙니다.
다만 예측물량은 말 그대로 '예측'입니다. 실제 출회량은 집주인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10~11월 실거래 집계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숫자보다 내 만기일이 먼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