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안이 발표된 8월 3일, 서울 아파트 매물은 6만409건이었습니다. 9일이 지난 8월 12일에는 6만4082건이 됐습니다. 3673건, 6% 늘어난 것입니다. 5월 16일(6만4153건) 이후 약 석 달 만의 최대치입니다. 숫자만 보면 "드디어 매물이 풀렸다"는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3673건을 자치구별로 쪼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늘어난 곳과 줄어든 곳이 명확히 갈렸고, 그 경계선은 대체로 가격대와 겹칩니다.
증가분의 43%가 세 개 구에서 나왔다
강남3구에서만 1589건이 늘었습니다. 서울 전체 증가분의 43.3%입니다. 서초구가 7630건에서 8263건으로 633건(8.3%), 강남구가 9453건에서 1만213건으로 760건(8.04%), 송파구가 5099건에서 5295건으로 196건(3.8%) 증가했습니다. 용산구도 1744건에서 1878건으로 134건(7.7%) 늘었습니다. 강남권과 한강벨트가 증가분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반대쪽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도봉구가 5.8% 감소했고 중랑구(-2.8%), 금천구(-1.4%), 강북구·노원구(-0.7%), 구로구(-0.6%)가 뒤를 이었습니다. 같은 9일 동안, 같은 서울에서, 매물이 8% 늘어난 구와 6% 줄어든 구가 동시에 나온 것입니다.
이번 개편안의 방향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체계를 '주택 수'에서 '주택 가액' 중심으로 옮기고, 실제 거주 여부에 따라 공제를 차등 적용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1주택자 기본공제는 12억원에서 14억원으로 올라가는 반면, 과세표준 6억원(시세 약 32억원)을 넘는 초고가 구간의 세율은 현행 1.0~2.7%에서 2028년까지 1.3~5.0%로 인상됩니다.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는 쪽은 고가·비거주 보유자이고, 매물이 나오는 곳도 정확히 그 구간입니다. 실제로 강남권에서는 호가를 수억원 낮춰 내놓은 물건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매물은 늘었는데, 사는 쪽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 두 번째 숫자가 필요합니다. 매물이 6% 늘어나는 동안 매수세는 관망에 머물렀습니다. 세제개편의 세부 적용 시점과 요건이 아직 정리되는 중이고, 여름 휴가철이 겹쳤습니다. 매물 증가가 곧 가격 조정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입니다.
시장의 기울기 자체는 여전히 위를 향해 있습니다. 8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26% 올라 77주 연속 상승을 기록했고, 상승을 주도한 곳은 중구(0.54%), 중랑구(0.52%), 성북구(0.49%), 노원구(0.46%) 같은 강북권이었습니다. 중랑구는 매물이 2.8% 줄어드는 동안 가격은 0.52% 올랐습니다. 매물이 늘어난 구와 가격이 오른 구가 서로 다른 곳이라는 뜻입니다.
금리도 아직 브레이크가 되지 못했습니다. 한국은행은 7월 기준금리를 2.75%로 0.25%포인트 올렸지만, 7월 말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778조9791억원으로 한 달 새 4조183억원 늘며 두 달 연속 4조원대 증가를 이어갔습니다. 주택가격전망지수는 4개월 연속 올라 2021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8월 2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두고 시장에서 '매파적 동결' 전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무엇을 봐야 하는가
첫째, 매물 총량이 아니라 구성입니다. 서울 전체 6만4082건이라는 숫자는 시장의 온도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관심 있는 단지와 평형, 가격대에서 실제로 선택지가 늘었는지를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강남권 매물 증가는 32억원 이상 초고가 구간의 이야기이고, 10억원 안팎 실수요 구간에서는 오히려 물건이 줄어든 지역이 많습니다.
둘째, 이 증가가 얼마나 이어지는지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것은 발표 직후 9일간의 반응입니다. 세제 적용 시점 이전에 정리하려는 매도 수요가 앞당겨 나온 것이라면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증가세가 유지되면서 실거래가가 뒤따라 조정된다면, 그때부터는 호가가 아니라 체결가를 봐야 할 국면입니다.
셋째, 임대시장으로 전가되는 경로입니다. 늘어난 보유세 부담이 전월세 가격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이미 시장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 전세시장은 매물 부족과 임대인의 월세 선호가 겹쳐 상승 압력이 유지되는 상황입니다. 매매시장의 매물이 늘어난 것과 별개로, 전세 계약 갱신을 앞둔 세입자에게는 다른 방향의 압력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매물이 늘었다는 헤드라인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 매물이 어디에서, 어떤 가격대에서 나왔는지를 함께 보지 않으면 시장을 정반대로 읽게 됩니다.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은 '매물이 풀리는 장'이 아니라, 세제가 겨냥한 구간과 그렇지 않은 구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분화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