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깎아 줘도 집값이 더 오를 거라고 믿는 사람은 집을 팔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에 한국은행이 숫자를 붙였습니다. 한은이 9월 22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아파트값이 연평균 1.1% 오를 것으로 예상하면 2027년에 집을 파는 편이 유리한 다주택가구는 30.4%입니다. 기대상승률이 최근 서울 아파트 상승률인 연 8.2%까지 높아지면 이 비중은 8.9%로 떨어집니다. 8·3 대책이 약속한 '다주택자 매물'이 실제로 나올지는 결국 기대심리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세 가지 기대, 세 가지 답
한은은 다주택자가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계산한다고 가정했습니다. 첫째는 2027~2028년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완화를 활용해 집을 팔고, 그 돈을 5년 만기 국고채에 넣는 것입니다. 둘째는 강화된 보유세를 내면서 집을 계속 갖고, 연 3% 수준의 임대수익과 시세차익을 얻는 것입니다.
결과는 기대상승률에 따라 크게 갈렸습니다.
- 연 1.1%(전국 평균 수준): 매도가 유리한 다주택가구 30.4% - 연 3.5%(수도권 평균 수준): 19.8% - 연 8.2%(최근 서울 수준): 8.9%
기대상승률이 1.1%에서 8.2%로 올라가면 매도가 유리한 가구의 비중은 3분의 1 이하로 줄어듭니다. 서울 다주택자 대부분이 지금의 상승 속도가 이어진다고 믿는다면, 양도세 완화만으로는 매물이 충분히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은도 "금번 대책의 효과는 향후 주택가격에 대한 기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매물은 늘지 않았고, 외곽은 더 올랐다
시장 데이터도 이 계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은은 대책 발표 6주 뒤 서울 아파트 매물이 약 7만 호로 과거 평균 수준에 머물렀다고 밝혔습니다. 매물이 눈에 띄게 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가격은 지역별로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7월 27일부터 9월 14일까지 강남구는 -1.28%, 서초구는 -0.94% 내렸습니다. 같은 기간 중랑구는 3.46%, 성북구는 3.36%, 서대문구는 3.15%, 강북구는 2.92% 올랐습니다. 보유세와 양도세 부담이 큰 고가 지역에서는 매도가 늘었고, 대출 문턱이 낮아진 중저가 지역으로는 매수가 몰렸습니다. 한은은 이를 두고 "중저가 주택가격이 높은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고 주택가격 상승 기대도 여전히 높다"고 진단했습니다.
대출은 잠시 멈췄을 뿐일 수 있다
가계대출 증가액은 5월 9조3000억원에서 8월 2조6000억원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한은은 "주택관련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재차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금융불안지수(FSI)는 8월 19.5로 '주의' 단계(12~24)에 머물렀고, 금융취약성지수(FVI)는 2분기 말 46.5로 장기평균까지 올라왔습니다.
집값만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서울 동북부(노원·도봉·강북 등) 아파트 전셋값은 연초 대비 10.11% 올라 2015년 이후 11년 만에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7월 162만원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 160만원을 넘었습니다. 매수든 임차든 실수요자의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습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것
첫째, 매물 수보다 '매물의 위치'를 보십시오. 매물 증가가 강남·서초 같은 고가 지역에 몰려 있다면 전체 시장의 공급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관심 단지가 속한 권역의 매물 추이를 따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2027년 양도세 완화 창구를 달력에 표시해 두십시오. 한은의 계산은 그 기간에 매도할지를 묻는 것입니다. 기대심리가 꺾이면 2027년 전후로 다주택자 매물이 한꺼번에 나올 수 있고, 꺾이지 않으면 매물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매수 시점을 정할 때 따져 봐야 할 변수입니다.
셋째, 외곽 중저가 추격 매수는 대출 여력부터 점검하십시오. 한은이 가계대출 재확대 가능성을 직접 거론한 만큼, 추가 대출 규제가 나올 여지도 있습니다. 잔금 시점까지 금리와 대출 한도가 유지된다는 전제는 위험합니다.
한은의 계산은 한 가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공급 대책과 세제 혜택이 효과를 내려면 먼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약해져야 합니다. 앞으로 발표될 주간 시세와 매물 통계는 그 믿음이 약해지고 있는지 보여 주는 지표로 읽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