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서울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전세 계약은 1만8217건이었습니다. 1년 전 같은 달(2만2646건)보다 4429건, 비율로는 19.5% 줄었습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4년 이후 월간 기준으로 가장 적은 수치입니다. 같은 기간 월세 확정일자는 4만5684건에서 4만6873건으로 2.6% 늘었습니다. 계약 자체가 줄어든 것이 아닙니다. 줄어든 것은 전세뿐이었습니다.
전세 비중 33.1%에서 28.0%로
두 수치를 합쳐 보면 흐름이 분명해집니다. 서울 임대차 확정일자 가운데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월 33.1%였는데, 올해 8월에는 28.0%로 5.1%포인트 내려갔습니다. 이제 서울에서 확정일자를 받는 임대차 계약 10건 중 7건 이상이 월세라는 뜻입니다.
수도권 전체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경기의 전세 확정일자는 2만3668건에서 1만9900건으로 15.9% 줄었고, 인천도 4806건에서 4070건으로 15.3% 감소했습니다. 서울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 가지 짚어둘 점이 있습니다. 확정일자 통계는 아파트만이 아니라 빌라·다세대 등 주택 임대차 전반을 포괄합니다. 또 보증금이 큰 반전세도 '월세'로 분류됩니다. 따라서 이 수치를 "전세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로 읽기보다는 "순수 전세의 몫이 빠르게 줄고 있다"로 읽는 것이 정확합니다.
전셋값은 오르고, 세입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전세 계약이 줄었는데 전셋값이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통계를 보면 9월 첫째 주(7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0.19% 올랐습니다. 2025년 2월부터 이번 주까지 83주 동안 누적 상승률은 11.57%입니다. 공급이 줄어드는 가운데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세입자들의 선택도 달라졌습니다. 더스쿠프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8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1만3709건 중 갱신 계약이 7089건으로 51.7%를 차지해 신규 계약보다 많았습니다. 새 전셋집을 구하기 어렵고 이사비와 중개수수료 부담도 있으니, 지금 사는 집에서 재계약하는 편을 택한 것입니다. 갱신이 늘면 시장에 나오는 전세 물건은 더 줄어듭니다. 공급 감소가 다시 공급 감소를 부르는 구조입니다.
대출 통계에서도 같은 흐름이 보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은행 전세자금대출은 한 달 새 7000억원 줄었습니다. 반면 주택담보대출은 4조원 늘어 잔액이 952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전세로 가던 돈의 일부가 매매로 옮겨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30대를 중심으로 전세에서 매매나 월세로 전환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실수요자와 투자자가 볼 것
첫째, 갱신 계약의 만기 시점입니다. 올해 재계약한 세입자 상당수는 2년 뒤 다시 시장에 나옵니다. 갱신요구권을 이미 쓴 세입자라면 그때는 시세대로 계약해야 합니다. 그 사이 전세 공급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2028년 무렵 임대료 부담이 한꺼번에 커질 수 있습니다. 전세 만기가 1~2년 남은 세입자라면 지금부터 월세 전환 비용이나 매수 여력을 따져 보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갭투자 계산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전세가 흔할 때는 세입자 보증금으로 매매가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순수 전세의 비중이 28%까지 줄면 원하는 조건의 전세 세입자를 제때 들이지 못할 위험이 커집니다.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면 초기 투자금이 늘어납니다. "전셋값이 오르니 갭이 줄었다"는 계산만으로 접근하면 곤란합니다.
셋째, 경매 물건의 권리분석입니다. 월세와 반전세가 늘면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이라도 보증금 규모는 물건마다 크게 달라집니다. 매각물건명세서의 보증금과 차임을 따로 확인하고, 낙찰자가 떠안을 금액을 계약 형태별로 정확히 계산해야 합니다. 이전보다 계약 형태가 훨씬 다양해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넷째, 9월 이후의 월간 수치입니다. 8월은 전통적으로 이사 비수기에서 가을 성수기로 넘어가는 달입니다. 9~10월에도 전세 확정일자가 비슷한 수준에 머문다면 계절 요인보다 구조적 변화로 판단할 근거가 더 강해집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의 확정일자 통계, 부동산원 주간 전세가격, 한국은행의 전세대출 증감을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전세 계약은 사상 최저로 줄었고 월세 계약은 늘었습니다. 시장에서 거래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수요가 월세와 매매로 옮겨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부담이 커지는 쪽은 여전히 세입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