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정부가 내놓은 '주택 신속공급 방안'에서 조합원 지갑에 가장 먼저 닿는 항목은 동의율도, 착공 목표치도 아니었습니다. 8월 31일부터 바뀌는 이주비 대출의 담보 기준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예시로 든 강북권의 한 정비사업 단지에서, 이주비 대출 한도는 2억4000만원에서 3억6000만원으로 1억2000만원 늘어납니다. LTV는 40% 그대로입니다. 비율은 그대로인데 한도가 1.5배가 된 것이죠. 바뀐 것은 '얼마를 빌려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담보로 보느냐'였습니다.
헐릴 집이 아니라, 지어질 집을 본다
지금까지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의 담보가치는 종전자산평가액 하나였습니다. 곧 헐릴 낡은 집의 감정가입니다. 재개발 구역의 노후 주택은 대지지분이 작거나 건물 가치가 사실상 0에 가까워 감정가가 낮게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40%를 곱하면 대출금은 인근 전세보증금에도 못 미치기 일쑤였습니다. 새 집을 받을 권리는 분명히 있는데, 그 사이 2~3년을 어디서 살지가 해결되지 않았던 겁니다.
8월 말 은행업감독업무 시행세칙이 개정되면, 종전자산평가액과 종후자산평가액(정비사업으로 지어질 신축 주택의 추산 가치) 중 더 큰 금액을 담보가치로 쓸 수 있습니다. 낡은 집이 아니라 앞으로 지어질 집을 기준으로 삼는 셈입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자산을 담보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규제 완화라기보다 담보 개념의 확장에 가깝습니다.
35곳 중 32곳이 여기서 멈춰 있었다
이 조치가 왜 나왔는지는 서울시 조사에 드러납니다. 올해 이주가 예정된 정비구역 35곳, 3만1075가구를 점검한 결과 91.4%인 32곳이 기본 이주비 대출만으로는 필요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열에 아홉이 같은 지점에서 걸려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주는 정비사업에서 되돌릴 수 없는 단계입니다. 관리처분인가가 나면 이주와 철거를 거쳐 착공으로 이어지는데, 이주가 6개월 밀리면 그 기간의 금융비용과 조합 운영비가 고스란히 쌓입니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조합원 분담금으로 돌아옵니다. 인허가를 아무리 앞당겨도 이주에서 1년을 잃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정부는 이주비·중도금·잔금 대출을 금융회사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에서 분리해 별도 관리하기로 했고,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도 1.5%에서 3%로 올렸습니다. 연말 은행 대출 창구가 닫히면서 이주 일정이 통째로 밀리던 문제를 겨냥한 조치입니다. 내년에는 주택금융공사의 '추가 이주비대출 보증상품'도 신설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
첫째, 우리 구역이 이 혜택을 받을 단계인가. 종후자산평가액은 관리처분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산출됩니다. 즉 관리처분 단계에 이른 구역이라야 적용 대상입니다. 조합설립이나 사업시행인가 단계라면 아직 대입할 숫자 자체가 없습니다. 8·13 대책의 동의율 완화(재개발 조합설립 75%→70%)와 이번 이주비 조치는 사업의 서로 다른 끝단을 건드린 것이고, 대부분의 구역은 둘 중 하나만 해당됩니다.
둘째, 비율과 한도는 그대로입니다. 규제지역 LTV 40%, 그리고 대출 한도 상한은 유지됩니다. 종후자산평가액이 아무리 높아도 상한에 걸리면 체감 증가폭은 예시만큼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주택자나 1+1 분양 신청 조합원의 취급 기준이 어떻게 바뀌는지는 조합 공문과 취급 은행 안내를 각각 확인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셋째, 8월 31일이라는 날짜입니다. 이미 이주비 약정을 체결한 구역이 재산정 대상이 되는지, 아니면 신규 실행분부터인지는 은행별 운용에 따라 갈릴 수 있습니다. 이주 개시를 앞둔 구역이라면 며칠 차이로 한도가 달라질 수 있으니 조합 집행부에 시행 시점 적용 기준을 먼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수도권 재개발·재건축 23만4000가구의 착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큰 숫자입니다. 다만 조합원 개인이 지금 계산해봐야 할 숫자는 그것이 아니라, 우리 구역의 종전자산평가액과 종후자산평가액의 차이입니다. 그 격차가 클수록 이번 조치의 실익이 크고, 격차가 작다면 8월 31일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