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분양 성수기가 시작됐다는 기사가 쏟아집니다. 9월 전국에 2만2704세대가 분양된다, 일반분양만 1만8643세대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3% 늘어난다 — 숫자만 보면 공급이 풀리는 것처럼 읽힙니다. 그런데 한 달 전 8월에도 똑같은 기사가 나갔습니다. 8월 분양 예정 물량은 33개 단지 2만8015세대였습니다. 실제로 청약 접수까지 간 물량은 26개 단지 1만9140세대. 계획의 68%입니다. 나머지 8875세대, 계획의 32%는 그달에 없던 일이 됐습니다.
분양 '예정'은 확정이 아닙니다
분양 예정 물량은 건설사가 그달에 하겠다고 밝힌 계획치입니다. 인허가가 끝났다는 뜻도, 분양가가 확정됐다는 뜻도 아닙니다. 실제 분양으로 이어지려면 입주자모집공고 승인이 나야 하고, 그 전에 분양가상한제 지역이라면 분양가심의를, 그 외 지역이라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공사비가 뛰거나 조합과 시공사가 분양가를 두고 합의하지 못하면 그달 계획은 그대로 다음 달로 밀립니다.
8월 수치를 조금 더 뜯어보면 방향이 보입니다. 단지 기준으로는 33곳 중 26곳(79%)이 분양을 진행했는데, 세대 기준으로는 68%에 그쳤습니다. 밀린 7개 단지가 평균보다 규모가 큰 단지였다는 뜻입니다. 일반분양만 따로 보면 예정 1만8861세대 중 1만4571세대(77%)가 나왔습니다. 조합원 물량을 뺀 실제 청약 대상은 계획보다 4290세대 적었습니다.
그래서 9월 2만2704세대라는 숫자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몇 달의 달성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실제 공급은 1만5000세대 안팎에 그칠 수 있습니다. 이 숫자는 확정치가 아니라 상한선에 가깝습니다.
밀린 물량이 어디로 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물량이 밀린다는 사실 자체보다, 어느 지역에서 밀리는지가 실수요자에게는 더 큰 문제입니다. 9월 계획 2만2704세대의 지역 분포를 보면 서울이 85세대, 경기·인천이 1만3452세대, 지방이 9167세대입니다. 서울은 애초에 계획 자체가 없다시피 하고, 밀릴 여지가 있는 물량은 대부분 경기·인천과 지방에 몰려 있습니다.
문제는 그 지역들의 청약 성적입니다. 7~8월 경기도에서 분양한 13개 단지 중 9곳이 1순위에서 미달했습니다. 경기 평균 경쟁률은 1.7대 1. 같은 기간 서울은 5개 단지가 모두 완판됐고, 291가구 모집에 1만7322건이 접수돼 평균 59.5대 1을 기록했습니다. 김포 한강, 오산, 부천 등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들이 미달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미분양 통계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7월 말 전국 미분양은 6만8217호로 전달보다 753호 늘었는데, 이 중 689호가 수도권에서 증가한 물량이었습니다. 지방은 64호 느는 데 그쳤습니다. 다 팔려서 늘지 않은 게 아니라, 지방은 이미 쌓일 만큼 쌓인 상태에서 신규 공급이 줄어든 결과입니다. 준공 후에도 주인을 못 찾은 이른바 악성 미분양은 2만9152호이고, 그중 2만4708호가 지방에 있습니다.
무엇을 봐야 하는가
첫째, 분양 계획 기사는 참고자료로만 쓰시기 바랍니다. 내 자금 계획을 세울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청약홈에 올라온 입주자모집공고입니다. 공고가 떠야 분양가, 중도금 대출 조건, 전매제한 기간, 실거주 의무 여부가 확정됩니다. 그 전까지는 모두 예상치입니다.
둘째, 밀린 단지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분양가 협의 때문에 미뤄진 단지는 다음 달에 더 높은 분양가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미달이 반복되는 지역에서는 계약금 완납 조건 완화나 중도금 무이자 같은 조건이 붙어 나오기도 합니다. 같은 '연기'라도 이유에 따라 결과가 다릅니다.
셋째, 경쟁률의 지역 편차를 자신의 가점과 겹쳐 보시기 바랍니다. 경기 외곽에서 미달이 반복된다는 것은, 낮은 가점으로도 당첨 가능한 물량이 실재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당첨이 곧 이익은 아닙니다. 미달 단지는 준공 후 미분양으로 남을 위험도 같이 안고 있습니다. 주변 신축 시세와 분양가의 차이, 입주 시점의 입주 물량, 그리고 무엇보다 잔금 조달 계획을 먼저 확인하신 뒤에 청약 통장을 쓰는 것이 순서입니다.
가을 성수기라는 표현은 계획표에서 나온 말입니다. 계획표의 3분의 1이 매달 사라지고 있다면, 성수기라는 단어보다 공고문을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