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가 경매에서 두 번 유찰됐습니다. 감정가는 36억4000만 원이었는데, 최저매각가격은 감정가의 70% 수준인 25억4800만 원까지 내려왔습니다(이데일리 12일 보도). 올해 초만 해도 감정가를 훌쩍 넘겨 팔리던 초고가 아파트가 이제는 "한 번 더 떨어지면 들어가겠다"는 물건이 됐습니다. 반대로 10억 원 미만 아파트는 여전히 감정가 위에서 팔립니다. 같은 서울 경매 법정에서 값에 따라 흐름이 갈리고 있습니다.
1월 125.3%에서 9월 86%로
지지옥션 집계에 따르면 감정가 30억 원 이상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올해 1월 125.3%였으나 9월에는 86%로 내려왔습니다. 낙찰가율은 감정가 대비 낙찰가의 비율입니다.
팔리는 물건 자체도 적습니다. 7월에는 11건 중 3건, 8월에는 10건 중 3건만 주인을 찾았습니다. 9월에는 10건 중 5건이 낙찰됐지만 대부분 감정가를 밑돌았습니다.
개별 사례를 보면 차이가 더 분명합니다.
- 성수동 트리마제 전용 152㎡: 감정가 73억9000만 원, 두 차례 유찰 뒤 58억7379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감정가의 79%로, 약 15억 원 낮은 값입니다. - 여의도동 삼부아파트: 감정가 50억8300만 원, 3차 입찰에서 40억2200만 원(79%)에 팔렸습니다.
이런 물건이 평균을 끌어내리면서 9월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94.7%로 내려갔습니다. 지난해 2월(91.8%)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같은 달, 10억 미만은 101.3%
중저가 쪽은 사정이 다릅니다. 9월 감정가 10억 원 미만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101.3%였고, 올해 평균도 99.9%입니다.
자치구별로는 강북구 109.6%, 노원구 107.4%, 구로구 106.3%, 도봉구 103.1%로 감정가를 넘겼습니다. 도봉구 창동2차현대에는 26명이 응찰했습니다. 영등포구 당산현대는 21명이 몰려 감정가 11억1000만 원보다 46.8% 높은 16억2999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와 보유세 인상 논의로 초고가 아파트의 매수세가 관망으로 돌아섰다고 분석했습니다. 외곽 지역은 공급 부족과 전셋값 상승으로 실수요가 들어와 금액대별로 흐름이 갈린다는 설명입니다. 대출이 가능한 15억 원 이하 구간에 수요가 모인다는 진단도 함께 내놨습니다.
감정가는 '지난해의 값'입니다
초고가 물건이 유찰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감정 시점입니다. 박형철 태인경매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에 감정가가 매겨진 물건이 최근 신건으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남권 호가가 빠지면서 감정가와 지금 시세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감정가에 사도 싸지 않으니 응찰자들이 유찰을 기다립니다. 강북권은 신건에서 바로 낙찰되지만 강남권은 유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정가의 79%"라는 숫자를 그대로 할인 폭으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감정가가 높게 잡혀 있었다면 79% 낙찰도 시세에 가까운 값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봐야 하나
첫째, 평균 낙찰가율보다 금액대별 수치를 보셔야 합니다. 서울 평균 94.7%만 보고 "경매가 식었다"고 판단해 중저가 물건에 낮은 값을 써내면 낙찰받기 어렵습니다. 이 구간은 여전히 감정가 이상에서 경쟁이 붙습니다.
둘째, 입찰가의 기준은 감정가가 아니라 지금의 실거래가와 급매 호가입니다. 사건마다 감정 시점을 확인하고, 그 뒤로 시세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유찰을 기다리는 전략에도 비용이 있습니다. 최저가가 내려가면 응찰자가 한꺼번에 몰려 낙찰가가 직전 최저가를 넘는 일이 생깁니다. 초고가 주택은 대출 여력이 작아 잔금 계획도 먼저 세워야 합니다.
넷째, 물건은 늘고 있습니다. 9월 서울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201건으로 전월(159건)보다 26.4% 늘어 최근 1년 중 가장 많았습니다. 이 전문위원은 대기 수요가 많아 낙찰가율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봤습니다. 다만 고가·대형 물건이 많이 나오면 전체 평균은 더 내려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세제 논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초고가 경매의 방향은 그 결론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지금의 86%를 바닥이나 추세로 단정하기보다 금액대별 수치를 달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