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8월 7일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 지원 실적에서, 눈여겨볼 숫자는 언론이 크게 다룬 '1만호 돌파'가 아니었습니다. 7월 31일 기준 LH가 경·공매로 낙찰받아 매입한 피해주택은 누적 1만256호입니다. 그런데 같은 자료에서 피해주택 매입 사전협의로 접수된 건수는 2만3712건이었고, 이 가운데 매입이 가능하다고 판단된 것은 1만6072건이었습니다. 7640건, 접수분의 약 32%는 매입 가능 판단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경매·공매를 통한 구제가 어디까지 닿고 어디서 멈추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연 90호가 월 752호가 되기까지
먼저 속도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LH의 피해주택 매입은 2024년 한 해 90호에 그쳤고, 2025년 상반기에도 월평균 163호 수준이었습니다. 올해는 1~7월에만 5265호를 매입해 월평균 752호로 올라섰습니다. 사전협의와 매입 요청 절차를 하나로 묶고 단계별 처리 기한을 정한 '패스트트랙', 그리고 지방법원과의 협의로 경매 일정 지연을 줄인 것이 배경으로 제시됐습니다.
제도의 뼈대는 경매장 안에 있습니다. 전세사기피해자법 제25조에 따라 피해자가 우선매수권을 LH 같은 공공주택사업자에게 양도하면, LH가 그 권리를 행사해 해당 주택을 낙찰받습니다. 감정가와 낙찰가의 차액, 즉 '경매차익'은 피해자 몫으로 돌아갑니다. 계속 거주를 원하면 차익을 공공임대 보증금으로 전환해 최대 10년간 살 수 있고, 퇴거를 택하면 차익을 직접 지급받습니다. 감정가 1억원짜리 주택을 7500만원에 낙찰받았다면 2500만원이 피해자에게 배정되는 구조입니다.
긴급 경·공매 유예도 함께 굴러갔습니다. 누적 협조 요청 1315건 중 1212건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103건은 유예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7640건이 걸린 지점
접수와 매입 가능 판단 사이의 간극은 대체로 '물건의 성격'에서 생깁니다. 위반건축물로 등재돼 공적 매입 기준을 통과하기 어려운 경우, 소유권이 신탁사에 넘어가 법원 경매가 아니라 신탁공매로 처분되는 경우, 다가구주택처럼 한 건물에 선순위 임차인이 여러 명 얽혀 권리관계 정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정부는 신탁물건 공개매각 참여와 공매차익 활용 등으로 이 사각지대를 좁혀 왔지만, 접수분의 3분의 1가량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이번 수치의 의미입니다.
규모 자체도 아직 줄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로 최종 결정된 건수는 누적 4만278건이고, 7월에만 1476건을 심의해 609건이 가결됐습니다. 지역별로는 서울 29.0%, 경기 22.1%, 인천 9.5%로 수도권이 60.7%를 차지하고, 주택 유형은 다세대(28.7%)·오피스텔(20.8%)·다가구(18.5%) 순입니다.
일반 입찰자가 함께 봐야 할 것
투자자 입장에서 이 제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선매수권은 최고가 입찰자가 정해진 뒤에도 같은 금액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다세대·오피스텔 물건에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최고가로 응찰하고도 낙찰이 넘어가는 일이 실제로 발생합니다. 수도권 빌라·오피스텔 경매에 들어간다면, 입찰 전에 매각물건명세서와 현황조사서에서 임차인의 피해자 결정 여부와 우선매수 신고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헛걸음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경매차익 구조는 낙찰가가 낮을수록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커지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즉 이 물건군에서는 낮은 낙찰가율이 곧 시장 냉각을 뜻하지 않습니다. 통계에 잡히는 빌라·오피스텔 낙찰가율을 아파트와 같은 잣대로 읽으면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리
지금 확인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내 물건이나 관심 지역이 다가구·신탁·위반건축물에 해당하는지. 이 세 유형은 공공 매입 경로에서 가장 자주 막힙니다. 둘째, 피해자라면 사전협의 접수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매입 가능 판단과 매입 요청(누적 1만4657건)까지 진행됐는지를 단계별로 확인해야 합니다. 셋째, 입찰자라면 우선매수권 존재 여부를 권리분석의 첫 항목으로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아직 닿지 않은 7640건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