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기사에서 우리가 늘 보는 숫자는 '낙찰가율'입니다.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101.7%, 전용 60㎡ 이하 소형은 112.8%까지 올랐습니다. 감정가보다 비싸게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 또 하나의 가격이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은행이 부실채권을 팔 때 받는 값, 이른바 매각가율입니다. 2023년 87.3%였던 이 숫자는 2024년 70.7%, 2025년 4분기에는 68.4%까지 내려앉았습니다. 일부 시중은행은 89.7%에서 64.7%로 25%포인트나 빠졌습니다. 경매장의 열기와 채권시장의 냉기, 이 두 온도차가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경매물건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경매를 '싸게 나온 집을 줍는 곳'으로만 보면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법원 경매장에 물건이 놓이기까지는 상류(上流)가 있습니다. 대출이 연체되면 은행 장부에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되고, 은행은 이 부실채권을 떠안고 있는 대신 NPL 전업사(유암코·대신F&I 등)나 투자자에게 할인해서 팔아넘깁니다. 채권을 산 쪽이 담보 부동산을 경매에 넘기고, 낙찰대금에서 배당을 받아 투자금을 회수합니다. 즉 우리가 경매정보 사이트에서 보는 그 물건은, 이미 한 번 '채권 가격'이 매겨진 뒤에 내려온 물건입니다.
이 상류의 규모가 작지 않습니다. 지난해 은행권 부실채권 매각액은 8조1000억원이었고, 삼일PwC는 2026년 상반기 시장도 4조원 안팎을 유지할 것으로 봤습니다. 기준금리가 내려도 고물가가 이어지고, 상호금융권 부실이 커지는 탓입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부실의 성격입니다. 아파트가 아니라 상업용 부동산과 다가구주택 담보 채권이 늘고 있습니다. 주택시장 바깥의 침체가 길어지면서, 버티던 한계차주들이 하나둘 손을 든 결과입니다.
왜 채권값은 떨어지는데 낙찰가는 오를까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두 숫자는 서로 다른 자산을 가리킵니다.
낙찰가율 101.7%는 서울 아파트 이야기입니다. 매매시장에서 호가가 오르니 감정가(보통 6개월~1년 전 시점)가 낡아 보이고, 그래서 감정가를 넘겨 써도 시세보다 싸 보입니다. 반면 매각가율 68.4%는 채권 전체, 그중에서도 상가·다가구·지방 물건이 뒤섞인 묶음의 가격입니다. 팔리지 않는 담보가 늘수록 사려는 쪽은 값을 깎습니다.
여기에 사는 쪽의 사정도 겹칩니다. NPL 전업사들의 레버리지 비율이 높아졌고 위험가중자산(RWA) 규제도 조여지면서, 예전처럼 공격적으로 값을 부를 여력이 줄었습니다. 파는 은행은 많은데 살 곳의 실탄이 준 것입니다. 결국 매각가율 하락은 "부동산이 싸졌다"는 신호라기보다 "부실의 질이 나빠졌고, 그것을 받아줄 돈이 줄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세 가지
첫째, 물건의 '출신'을 보십시오. 상업용·다가구 담보 부실이 늘고 있다는 말은, 앞으로 경매장에 그런 물건이 더 나온다는 뜻입니다. 아파트 경매의 과열된 낙찰가율을 보고 "경매가 뜨겁다"고 판단해 상가나 다가구에 같은 잣대를 대면 위험합니다. 두 시장은 지금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둘째, 권리분석은 상가·다가구에서 진짜 시험대에 오릅니다. 아파트는 권리관계가 대체로 단순합니다. 하지만 근린상가와 다가구주택은 선순위 임차인, 유치권, 배당순위가 얽힌 사례가 흔합니다. 낙찰가가 싸 보여도 인수해야 할 권리가 붙어 있으면 실제 매입가는 껑충 뜁니다. 등기부등본과 매각물건명세서를 끝까지 읽고, 인수되는 권리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셋째, 입찰장의 상대가 누구인지 아십시오. 채권을 싸게 매입한 NPL 투자자는 배당을 최대화하기 위해 직접 입찰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들은 채권 매입가라는 '바닥'을 알고 들어오는 사람들입니다. 정보가 비대칭한 게임에서 감으로 가격을 밀어붙이는 것은, 이길 확률이 낮은 싸움입니다.
정리하면
경매는 부동산시장의 마지막 정거장이 아니라, 금융시장이 떠넘긴 짐이 도착하는 하역장에 가깝습니다. 은행이 채권을 68%에 넘긴다는 사실은 앞으로 어떤 물건이, 어느 정도 규모로, 어떤 상태로 경매장에 도착할지를 미리 알려주는 예고편입니다.
서울 소형 아파트의 112.8%라는 숫자만 보고 경매를 '기회의 시장'으로 읽는다면, 정작 물량이 쏟아질 상가·다가구의 위험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찰가율을 좇는 눈이 아니라, 그 물건이 어디서 왔는지를 되짚는 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