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동부지법 경매 법정. 강동구 길동의 전용 24.4㎡ 다세대주택이 첫 회차 경매에 나왔습니다. 감정가는 2억6600만원. 유찰 한 번 없이 첫 기일에 6명이 붙었고, 낙찰가는 3억6201만원이었습니다. 감정가의 136%. 한때 '전세사기의 무덤'이라 불리며 아무도 손대지 않던 그 빌라 경매장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더 눈여겨볼 것은 낙찰자가 누구였느냐입니다. 지난 2년간 서울 빌라 경매의 큰손은 사실상 주택도시보증공사(HUG)였습니다. 전세보증금을 대신 돌려준 뒤 채권을 회수하려 스스로 낙찰받는, 이른바 셀프 낙찰이었죠. 그런데 올해 상반기 서울 빌라 경매에서 낙찰된 5672건 가운데 4347건, 즉 76.6%를 일반 응찰자가 가져갔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HUG 직접 낙찰 3510건, 제3자 낙찰 4228건으로 팽팽했던 구도가 반년 만에 무너진 것입니다. 경매장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HUG가 '대항력'을 내려놓자 물건이 깨끗해졌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답은 권리분석에 있습니다.
전세사기 물건이 그동안 기피 대상이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위변제로 임차인의 권리를 넘겨받은 HUG가 우선변제권과 대항력을 함께 쥐고 있으면, 낙찰자는 배당으로 다 회수되지 않은 보증금 잔액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감정가보다 싸게 낙찰받아도 인수 금액을 더하면 시세를 넘어서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러니 일반인은 들어올 수 없었고, HUG가 직접 받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HUG는 경매 회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우선변제권만 행사하고 대항력은 포기하는 방식을 확대했습니다. 대항력을 포기한 물건은 매각과 동시에 임차권이 소멸합니다. 낙찰자가 추가로 물어줄 보증금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인수 부담이 사라진 물건은 평범한 빌라 경매 물건이 됐고, 개인 응찰자가 밀려들었습니다.
숫자가 이를 보여줍니다. 4월 제3자 평균 낙찰가율은 74.98%로 HUG(67.28%)를 7.7%포인트 앞질렀고, 6월에도 제3자 73.20%가 HUG 69.59%를 웃돌았습니다. 회수만 하면 되는 기관보다 개인이 더 비싸게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시장이 이 물건을 더 이상 위험 자산으로 보지 않는다는 신호입니다.
전세난이 빌라를 다시 불렀다
또 하나의 동력은 아파트입니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물건이 마르면서 밀려난 수요가 빌라로 향했습니다. 서울 전셋값은 5월 한 달 0.59% 올라 13년 7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고, 연립주택 매매가격도 1~5월 3.37% 뛰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0.59%였던 것과 비교하면 온도차가 뚜렷합니다.
빌라 전세 수요가 살아나자, 경매 투자자에게는 익숙한 셈법이 되돌아왔습니다. 낙찰가와 비슷한 수준의 보증금으로 새 임차인을 들여 투입 자금을 곧바로 회수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경매는 취득 절차상 토지거래허가나 자금조달계획 심사의 문턱이 매매와 다릅니다. 규제가 촘촘해질수록 경매장이 붐비는 구조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봐야 하나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위 흐름은 물건마다 성립하지 않습니다.
첫째, 대항력 포기는 자동이 아닙니다. 같은 HUG 물건이라도 포기한 건이 있고 아닌 건이 있습니다. 확인처는 뉴스가 아니라 매각물건명세서입니다. '임차인의 대항력 유무'와 '인수되는 권리' 항목에서 소멸 여부를 직접 읽어야 합니다. 이 한 줄을 건너뛰면 수억원을 떠안습니다.
둘째, 낙찰가율 숫자를 믿지 마십시오. 전세사기 물건의 감정가는 상당수가 가격 고점기에 매겨졌습니다. 감정가 대비 73%가 싸 보여도, 인근 실거래가 대비로는 비쌀 수 있습니다. 기준은 감정가가 아니라 최근 실거래가와 실제 전세 시세입니다.
셋째, 출구가 예전만큼 넓지 않습니다. 낙찰 즉시 보증금으로 회수한다는 전략은 새 임차인이 전세보증에 가입할 수 있어야 성립합니다. 공시가격 기준 전세가율 요건에 걸리면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빌라는 아파트처럼 급할 때 팔리지 않는 자산이라는 점도 잊지 마십시오. 미납 관리비, 명도 비용, 조세채권 역시 낙찰가에 더해야 할 실제 원가입니다.
경매장의 주인이 바뀐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기관이 물러난 자리를 개인이 채웠다는 말은, 기관이 지던 위험을 이제 개인이 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물건 하나하나의 서류를 읽어낸 사람에게만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