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경매 접수가 4년 만에 절반 넘게 늘었습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9월 29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법원의 경매 접수는 2021년 7만8885건에서 지난해(2025년) 12만1261건으로 약 54% 증가했습니다. 법원은 원인으로 기준금리 인상과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 증가를 꼽았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신청한 경매는 2024년 7101건에서 2025년 1만1663건으로 1년 만에 약 64% 늘었습니다. 이 숫자는 앞으로 경매 시장에 나올 물건이 어떤 모습일지 먼저 보여 줍니다.
접수 통계에는 1년 뒤의 매물이 보입니다
연도별로 보면 흐름이 분명합니다. 2021년 7만8885건, 2022년 7만7459건으로 제자리였던 접수는 2023년 10만1150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이어 2024년 11만9312건, 2025년 12만1261건을 기록하며 3년 연속 10만 건을 넘었습니다.
금리가 가장 가파르게 오른 해는 2022년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해 접수는 줄었습니다. 이자를 연체한 뒤 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경매는 신청 뒤 감정평가와 배당요구 종기 등을 거쳐 첫 매각기일까지 보통 수개월이 걸리고, 유찰되면 시간은 더 늘어납니다. 지난해 접수된 12만 건 가운데 상당수는 올해와 내년 입찰 법정에 나오게 됩니다. 요즘 "물건이 너무 많다"는 현장의 말은 바로 이 시차에서 나옵니다.
함께 공개된 도산 통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지난해 개인회생은 14만9147건으로 15.2%, 법인파산은 2282건으로 17.6%, 회생합의 사건은 1321건으로 20.7% 늘었습니다. 개인의 채무 부담은 주택·빌라 경매로, 기업의 부실은 상가·공장·토지 경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HUG 물건, 1년 새 64% 늘었습니다
이번 통계에서 가장 눈여겨볼 숫자는 HUG 신청 건수입니다. HUG는 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한 전세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먼저 내준 뒤 그 채권을 회수하려고 경매를 신청합니다. 1만1663건이라는 숫자는 전세사기와 역전세의 뒷정리가 본격적으로 법원에 넘어왔다는 뜻입니다.
물건은 특정 지역에 몰려 있습니다. 법원은 HUG 신청 경매의 약 70%가 서울남부지법, 인천지법, 부천지원에 집중됐다며 이 세 곳에 사법보좌관 등 인력을 긴급 증원하고 전담 경매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서·양천, 인천, 부천처럼 빌라와 오피스텔이 밀집한 곳입니다. 전국 경매계는 2021년 359개에서 2025년 397개로 늘었습니다(일부 보도는 2025년 1월 기준 411개로 집계). 법원이 조직까지 늘려야 할 만큼 사건이 쌓였다는 뜻입니다.
물건이 많다고 다 싼 것은 아닙니다
물건이 늘면 선택지가 넓어지고 유찰도 늘어 가격이 내려가는 물건이 생깁니다. 하지만 HUG 물건을 비롯한 전세 사고 물건은 권리관계가 까다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입찰 전에 다음 세 가지를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세입자가 말소기준권리보다 먼저 전입과 확정일자를 갖췄다면, 배당받지 못한 보증금을 낙찰자가 떠안을 수 있습니다. HUG가 보증금을 대신 내줬다면 그 권리는 HUG가 이어받습니다. HUG가 일부 물건에 대해 인수 대항력을 포기하는 확약서를 내는 경우도 있으니, 매각물건명세서의 특별매각조건에 이 내용이 적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셔야 합니다.
둘째, 여러 번 유찰된 이유를 따져 보셔야 합니다. 빌라는 시세를 확인하기 어려워 감정가가 실거래가보다 높게 잡히는 일이 흔합니다. 두세 번 유찰돼 최저가가 감정가의 절반 가까이 내려왔더라도, 실제 매매 시세나 전세 시세보다 싸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수해야 할 보증금까지 더하면 더 비싸질 수도 있습니다.
셋째, 낙찰 뒤의 출구를 먼저 그려 보셔야 합니다. 전세 수요가 약한 지역의 다세대주택은 낙찰받아도 세입자를 구하거나 되팔기가 쉽지 않습니다. 체납 관리비와 명도 비용도 입찰가에 미리 반영해 두셔야 합니다.
무엇을 봐야 할까요
앞으로 몇 달 동안 경매 시장의 공급은 줄기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해 접수된 사건들이 차례로 매각기일을 맞기 때문입니다. 실수요자에게는 권리관계가 깨끗한 아파트 물건을 골라 담을 기회가 넓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 빌라·오피스텔 위주의 HUG 물건은 싸 보이는 가격 뒤에 떠안을 부담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확인할 지표는 세 가지입니다. 월별 경매 진행 건수, 서울남부·인천·부천 법원의 유찰 횟수, 그리고 HUG의 대항력 포기 물건 비중입니다. 물건이 많다는 사실보다 어떤 물건이 왜 남아 있는지가 입찰의 기준이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