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살던 집을 직접 낙찰받는 일은 이제 드물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낙찰받으면 보증금을 더 잃을 수 있어, 대부분 떠밀리듯 입찰장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집을 받으면 무주택자가 아니게 되어, 나중에 제대로 된 집을 살 때 생애최초 대출 혜택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금융당국이 이 문제에 대한 기준을 내놓았습니다. 은행연합회가 9월 30일 은행들에 배포한 '생애최초 인정 요건 관련 은행권 Q&A'에,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경매·공매로 취득한 경우에도 생애최초 LTV를 인정한다는 당국의 공식 해석(유권해석)이 담겼습니다.
무엇이 바뀌었나
출발점은 8·13 부동산 대책입니다. 금융위원회는 8월 31일부터 생애최초 LTV 적용 요건을 완화했습니다. 미성년 시절 상속처럼 피할 수 없는 사유로 주택 이력이 생겼다면 은행이 자체 심사로 예외를 인정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사유'의 범위를 은행이 알아서 정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은행권에서는 자체 기준을 세우기 부담스럽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은행연합회가 은행들의 질의를 모아 금융위 답변을 받아 정리한 것이 이번 Q&A입니다.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 대상: 전세사기피해자 결정문을 가진 사람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그 피해주택을 경매·공매 등으로 취득한 경우 - 처분 조건: 해당 주택을 이미 처분했거나 처분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수도권·규제지역은 6개월 이내 처분을 약정해야 하고, 그 밖의 지역은 계약금을 낸 매매계약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 한도: 생애최초로 인정되면 LTV는 수도권·규제지역 70%, 비규제지역 80%가 적용됩니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은행권은 이달 중 이 기준을 전산에 반영할 예정입니다.
왜 중요한가
국토교통부 집계로 8월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로 결정된 사람은 누적 4만936명입니다. 8월 한 달에만 658명이 새로 결정됐습니다. LH가 우선매수권을 넘겨받아 사들인 피해주택도 1만718가구에 이릅니다.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둘입니다. LH에 우선매수권을 넘기고 그 집에 임대로 사는 길과 직접 낙찰받는 길입니다.
직접 낙찰을 택한 피해자는 그동안 손해를 두 번 봤습니다. 보증금을 지키려다 생애최초 자격까지 잃은 것입니다. 이번 해석으로 떠안은 집이 다음 집 구입을 가로막는 문제는 상당 부분 풀렸습니다. 다만 한 은행권 관계자가 "적용 사례가 많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듯, 조건을 하나씩 따져 보면 문은 생각보다 좁습니다.
무엇을 봐야 하나
첫째, 결정문이 먼저입니다. 피해자 결정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낙찰받은 집은 이번 인정 대상이 아닙니다. 경매가 진행 중이라면 피해자 결정 신청 상황부터 확인하시는 게 순서입니다.
둘째, 처분 기한이 현실적인지 보셔야 합니다. 수도권에서는 낙찰받은 집을 6개월 안에 팔겠다고 약정해야 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주택은 빌라·다세대가 많고, 이런 주택은 매수자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새 집을 계약하기 전에 기존 집이 그 기간 안에, 얼마에 팔릴지 따져 보셔야 합니다. 지방은 계약금을 낸 매매계약서를 먼저 내야 하니, 기존 집 매도 계약이 사실상 선행 조건입니다.
셋째, 주택소유정보확인시스템(HOMS) 이력을 확인하세요. 이번 Q&A는 등기부나 건축물대장이 없더라도 재산세 납부 이력 등으로 HOMS에서 주택으로 조회되면 주택 보유 이력에 포함된다고 정리했습니다. 무허가 주택이나 오래된 상속 지분이 있다면 미리 조회해 보시는 게 좋습니다. 상속 지분은 원인무효로 등기를 말소한 경우에만 이력에서 빠집니다.
넷째, 풀린 것은 LTV뿐입니다. 생애최초로 인정받아도 DSR 같은 다른 대출 규제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LTV 70%가 곧 대출 가능액이라는 뜻은 아니니, 소득 기준 한도를 함께 계산해 보셔야 합니다. 은행마다 전산 반영 시점이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세요. 이번 Q&A는 은행 여신심사위원회가 요건을 미리 정해 두면 지점장 전결로도 예외를 인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운용은 은행별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보증금을 지키려 입찰장에 들어간 피해자에게 이번 해석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다만 혜택은 피해주택을 정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낙찰을 고민 중이시라면 입찰 전에 처분 계획까지 함께 세워 두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