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난 8월 7일 시청에서 '재개발·재건축 주택공급 부족 원인진단 및 대책' 2차 보고서를 브리핑했습니다. 앞서 8월 5일 오세훈 시장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에게 직접 전달한 문건의 후속입니다. 이번 보고서가 이전 자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동안 논쟁만 무성했던 정비사업의 실제 순증 효과와 이주 물량을 숫자로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재개발·재건축 구역에 물건을 두고 계신 분들, 그리고 전세로 그 인근에 사시는 분들 모두에게 직접적인 이야기입니다.
착공 31만1000, 멸실 22만6000, 남는 것은 8만5000
핵심 수치부터 보겠습니다. 서울시는 2031년까지 정비사업으로 31만1000가구를 착공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원래 있던 집 22만6000가구가 헐립니다. 결과적으로 순수하게 늘어나는 물량은 8만5000~9만 가구, 착공 물량 대비 39.2% 수준입니다.
이 39%라는 숫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이번 논쟁의 출발점입니다. "10채를 지어도 6채는 원래 있던 집을 대체하는 데 쓰인다"고 읽으면 정비사업의 공급 효과는 과대평가된 셈이 됩니다. 반대로 "가용 부지가 사실상 없는 서울에서 8만5000가구를 만들어낼 다른 방법이 있느냐"고 되물으면 결론이 달라집니다. 서울시는 후자의 입장입니다.
실적 근거도 함께 제시됐습니다. 이미 준공된 정비사업장 59곳을 분석한 결과 사업 전 대비 가구 수가 평균 36.4% 늘었고, 유형별로는 재개발이 27.4%, 재건축이 44.2% 증가했습니다. 낡은 아파트를 다시 짓는 재건축의 증가율이 재개발보다 높게 나온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주 대란'은 22만6000이 아니라 9만8000이라는 계산
시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전세 시장입니다. 22만6000가구가 헐리면 그 사람들이 한꺼번에 임차 시장으로 쏟아진다는 걱정입니다. 서울시의 답은 실제 이주 수요는 9만8000가구라는 것입니다.
차이가 왜 생길까요. 멸실 물량 전체가 곧 이주 수요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비어 있는 집, 소유자가 다른 곳에 거주 중인 집이 상당수입니다. 서울시는 이를 걷어내면 연평균 약 2만 가구 수준이며, 시와 자치구의 이주관리 시스템으로 시기를 분산하면 감당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지원 대상도 기존 2000가구 이상 사업장에서 1000가구 이상으로 넓히기로 했습니다.
다만 보고서에 담긴 이동 패턴은 실수요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목입니다. 이주민의 약 84%는 아파트에서 비(非)아파트로 옮겨 갔고, 약 20%는 경기도로 빠져나갔습니다. 즉 이주 대란이 서울 아파트 전세값으로 곧장 튀는 것이 아니라, 인근 빌라·오피스텔과 경계 지역 경기권으로 먼저 번진다는 뜻입니다. 정비구역 인접지의 비아파트 임대료를 보시는 것이 체감에 더 가깝습니다.
규제 완화 요청은 아직 '협의 중'에 멈춰 있습니다
서울시가 정부에 요청한 항목은 명확합니다. ▲이주비 대출 LTV 40%→70% ▲민간 정비사업 용적률 1.2배 상향 ▲조합원 지위양도 제한 3년 한시 유예 ▲재개발 조합설립 동의율 75%→70% ▲재개발 임대주택 의무비율 완화입니다.
이 중 가장 급한 것은 이주비입니다. 이주비는 집을 사는 돈이 아니라 사업을 굴리기 위한 필수 비용인데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똑같이 묶여 있다는 것이 서울시 논리입니다. 실제로 노량진1구역에서는 조합원 961명 중 약 70%가 1+1 분양 신청자이거나 다주택자로 분류돼 기본 이주비 대출이 막힌 상태였습니다. 서울시는 규제 적용 기준을 기존 주택이 아닌 신축 기준으로 바꾸는 우회안까지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진도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국토교통부는 "건의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에 머물러 있고, 기획재정부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 이상 진전된 것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다주택자 대출 불가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셔야 할까요
첫째, 보유하신 구역이 이주·철거 단계에 임박했다면 이주비 조달 계획을 규제 완화에 기대지 마십시오. LTV 70%는 아직 건의 단계이며 금융당국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현행 40% 기준으로 자금 계획을 세우시고, 다주택자·1+1 신청자라면 대출 가능 여부를 조합이 아니라 은행에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둘째, 순증률 39%는 입주권 가치 판단의 기준선이 됩니다. 일반분양 물량이 적을수록 조합원 분담금 부담은 커집니다. 재건축 44.2%와 재개발 27.4%의 격차가 그대로 사업성 격차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고 비교하셔야 합니다.
셋째, 서울시와 국토부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변수입니다. 용적률·동의율·지위양도 완화는 모두 사업 속도와 직결되는 항목이지만, 어느 것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발표된 계획이 아니라 고시된 내용을 기준으로 판단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