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5일 강원 강릉시 교동의 한 아파트가 1순위 청약을 받았습니다. 302가구를 모집했고, 신청자는 1명이었습니다. 같은 달 18일, LH는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는 세 번째 공고를 냈습니다. 연내 5000가구 규모, 매입 상한은 감정평가액의 90%, 신청 마감은 9월 21일입니다. 두 소식은 별개로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지방에서 안 팔린 집을 이제는 시장이 아니라 공공이 받아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구조가 분양가와 경매 낙찰가의 바닥을 조용히 다시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만9786가구, 그중 84.2%
국토교통부 6월 주택통계를 보면 전국 미분양은 6만7464가구로 한 달 새 3.4% 늘었습니다. 이 중 이미 다 지어놓고도 주인을 못 찾은 '준공 후 미분양'이 2만9786가구입니다. 시장에서 악성 미분양이라 부르는 물량이고, 2월에 14년 만에 3만 가구 선을 넘은 뒤 그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분포입니다. 2만9786가구 가운데 2만5091가구, 84.2%가 지방입니다. 대구가 3575가구로 가장 많고 부산 3292가구, 경남 3226가구가 뒤를 잇습니다. 강원은 한 달 사이 27.3% 늘며 증가폭이 가장 컸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청약 경쟁률이 세 자릿수를 유지하는 동안, 같은 나라의 다른 절반에서는 302가구에 1명이 오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그은 선, 감정가의 90%
정부는 이 물량을 공공이 흡수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LH의 지방 준공 후 미분양 매입 목표를 3000가구에서 8000가구로 늘렸고, 매입 상한가를 감정평가액의 83%에서 90%로 올렸습니다. 8월 18일 나온 3차 공고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전 지역이 대상이며, 이미 준공했거나 11월 말까지 준공 예정인 단지가 신청할 수 있습니다. 매입한 집은 든든전세 주택으로 무주택자에게 공급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숫자는 8000도 5000도 아닌 '90%'입니다. 이 숫자는 지방 시행사와 건설사에 하나의 신호를 줍니다. 분양이 실패해도 감정가의 90% 근처에서는 회수가 가능하다는 신호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30~40% 할인분양을 감행할 이유가 줄어듭니다.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기다리면 나왔을 파격 할인 물량이 사라지는 것이고, 경매 시장에서는 채권자와 시행사가 버틸 수 있는 하한선이 한 단계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방 아파트 경매 물건의 낙찰가율을 볼 때 감정가 90%라는 공공 매입선이 위에서 누르는 뚜껑이자 아래를 받치는 바닥으로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안 팔리는데 왜 또 짓는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여기입니다. 6월 전국 착공은 2만3638가구로 1년 전보다 18.1% 줄었고 인허가는 1만7917가구로 36.1% 감소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공급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준공 후 미분양이 가장 많은 상위 10개 지역 중 6곳에서는 착공이 오히려 늘었습니다. 경북은 459.2%, 충남은 285.4%, 전남은 121.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됩니다. 안 팔린 집이 가장 많이 쌓인 곳에서 새 삽을 가장 많이 뜨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분양이 사업의 위험으로 돌아오지 않고 공공 매입으로 정산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시장이 스스로 공급을 줄이는 기능은 약해집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매입 대상을 가격 경쟁에 부치는 역경매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무엇을 봐야 하는가
첫째, 9월 21일 3차 공고 마감 이후의 신청 규모입니다. 목표 물량 대비 신청이 넘치면 지방 재고가 예상보다 깊다는 뜻이고, 미달이면 시행사들이 90%보다 더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든 지방 분양가의 실질 하한을 읽는 단서가 됩니다.
둘째, 이달 말 발표될 7월 주택통계에서 준공 후 미분양이 3만 가구를 다시 넘는지입니다. 매입 확대가 발표된 뒤에도 숫자가 줄지 않는다면, 정책의 속도가 적체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셋째, 지방 물건에 입찰하려는 분이라면 해당 단지가 LH 매입 신청 대상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공공이 감정가 90%를 제시하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은, 같은 감정가라도 협상의 무게가 다릅니다. 지금 지방 시장에서 가격을 정하는 주체가 수요자가 아니라는 점, 이것이 이번 통계가 알려주는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