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하나가 골목의 용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건물의 일부를 호스텔로 바꾸는 '용도변경' 신고가 올해 1~5월에만 170건 접수됐습니다. 2024년 같은 기간 18건, 2025년 45건이었으니 2년 만에 844% 늘어난 셈입니다. 배경에는 더 큰 숫자가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방한 외국인이 반기 기준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1~5월에만 872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21만 명)보다 21% 많았고, 5월 한 달 방한객은 195만 명으로 역대 최고였습니다. 관광이 늘자, 관광객이 머무는 건물의 쓰임이 먼저 움직인 것입니다.
여섯 달 만에 1000만 — 관광의 결이 달라졌다
주목할 것은 규모만이 아니라 '구성'입니다. 과거 방한 시장을 이끌던 중국 단체관광객 일변도에서, 미국·동남아시아의 개별관광객으로 저변이 넓어졌습니다. 개별 여행자는 정해진 호텔 패키지 대신 지하철역 인근의 저렴하고 소통하기 좋은 숙소를 선호합니다. 호스텔이 '커뮤니티형 숙소'로 다시 각광받는 이유입니다.
소비 지표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5월 외국인의 국내 카드 지출액은 2조1000억 원으로, 2018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월 2조 원을 넘었습니다. 상반기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외국인 매출도 1조7200억 원으로 반기 기준 최대였습니다. 방문지도 서울 도심을 넘어 부산·전주 등으로 잘게 쪼개지고 있습니다. 한 번 오고 마는 손님이 아니라 '재방문하는 개별 여행자'라는 점이 숙박 수요의 지속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명동·을지로·강남, 다시 역세권으로
용도변경이 몰린 곳은 명동·을지로·강남 등 외국인 수요가 집중된 핵심 상권, 그중에서도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자리였습니다. 이 흐름이 부동산 시장에 던지는 신호는 분명합니다. 그동안 공실이나 임대료 정체로 애를 먹던 역세권의 노후 근린생활시설·소형 건물이, 숙박이라는 새 용도를 만나 현금흐름을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만 '용도변경 급증'을 곧 '고수익 보장'으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호스텔 전환은 특정 상권에 쏠려 있고, 관광 경기라는 외부 변수에 민감합니다. 환율·항공 노선·국가 간 관계가 흔들리면 수요는 빠르게 되돌아옵니다. 숙박업 등록과 소방·건축 기준, 주거지역과의 갈등 같은 규제 문턱도 낮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844%'는 성장의 속도이자, 특정 입지에 집중된 위험의 크기이기도 합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것
첫째, 입지의 '지속성'입니다. 단발성 유행 상권인지, 재방문 개별관광객이 꾸준히 지나는 역세권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둘째, 규제와 원가입니다. 용도변경·숙박업 인허가 비용, 안전 설비 투자, 그리고 관광 비수기의 공실을 버틸 현금흐름을 보수적으로 계산해야 안전마진이 남습니다.
넓게 보면 이 현상은 '외국인이 바꾼 부동산'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주택은 10만8231호로, 이 중 중국인이 56.8%, 수도권이 72.3%를 차지합니다. 관광객은 건물의 '용도'를, 정주 외국인은 주택의 '소유'를 바꾸고 있는 셈입니다. 두 흐름은 성격이 다르지만, 국내 규제·금리에만 고정돼 있던 시선을 '누가 이 공간을 쓰는가'로 넓혀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골목의 간판이 바뀌는 속도가, 지금 도심 부동산의 온도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