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통장은 그동안 '내 집 마련의 입장권'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입장권을 스스로 반납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로 6월 말 전국 청약통장 가입자는 2,583만4,034명. 한 달 사이 10만639명이 줄었고, 1년 전과 비교하면 54만2,335명이 사라졌습니다. 올 상반기에만 통장을 해지한 사람이 35만7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2배에 달합니다. 숫자만 보면 '시장이 식었구나' 싶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떠난 쪽은, 당첨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
주목할 대목은 '누가 떠났는가'입니다. 가입 기간이 길어 청약 순위가 높은 1순위 가입자는 1,704만 명에서 1,664만 명으로 40만 명 넘게 줄었습니다. 반면 이제 막 통장을 만들었거나 조건이 덜 갖춰진 2순위는 6만256명이 오히려 늘었습니다.
보통 시장이 나빠지면 관망하던 신규 가입자부터 발을 뺍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오래 부어온, 당첨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사람들이 먼저 통장을 접고 있습니다. 몇 년을 기다린 끝에 '이 정도 점수로는 어차피 안 된다'는 계산이 서자, 통장에 묶여 있던 목돈을 빼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통장을 지키는 비용이, 통장이 주는 기대보다 커진 셈입니다.
만점을 채워도 미끄러지는 당첨선
이들의 계산은 근거가 있습니다. 청약가점제의 최저 당첨선이 사실상 '만점 경쟁'으로 치달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인기 단지의 최저 당첨 가점은 2024년 59점에서 2025년 65점으로 올랐고, 올해 서초 '아크로 드 서초'는 최저 당첨 가점이 만점인 84점, '오티에르 반포'는 74~79점을 기록했습니다.
청약가점 84점은 무주택 기간·부양가족 수·통장 가입 기간을 전부 최대치로 채워야 나오는 점수입니다. 4인 가구가 현실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상한은 69점 안팎입니다. 다시 말해, 웬만한 가정은 조건을 완벽히 갖춰도 인기 단지 문턱조차 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기다리면 언젠가 된다'는 청약의 오랜 약속이, 상급지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습니다.
분양가가 밀어낸 사람들
이탈을 밀어붙인 또 다른 축은 분양가입니다. 올해 5월 수도권 민간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3,656만원으로 1년 전(2,874만원)보다 27.2% 뛰었습니다. 서울은 3.3㎡당 5,905만원으로, 2023년(3,553만원) 대비 3년 만에 약 66% 올랐습니다.
여기에 대출 규제가 겹쳤습니다. 당첨돼도 잔금을 치를 대출이 막히면 그 당첨은 '그림의 떡'이 됩니다. 높은 분양가와 조인 대출, 오를 대로 오른 당첨선.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당첨돼도 못 산다'는 인식이 굳어졌고, 그 결과가 통장 해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엇을 봐야 하나
청약통장 이탈은 단순한 통계 변화가 아니라, 공공 청약 제도의 신뢰가 흔들리는 신호입니다. 실수요자라면 다음 세 가지를 짚어보시길 권합니다.
첫째, 본인의 가점을 냉정하게 계산하십시오. 노리는 지역의 최근 최저 당첨 가점과 내 점수 차이가 크다면, 가점제 대신 추첨제 물량이나 무순위·미분양 단지로 전략을 바꾸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둘째, 통장은 함부로 해지하지 마십시오. 가입 기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자산입니다. 상급지가 아닌 공공분양이나 비수도권, 신혼·생애최초 특별공급에서는 여전히 통장의 힘이 살아 있습니다.
셋째, 2순위가 늘고 있다는 점은 시장이 완전히 식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탈이 곧 기회의 공백이 되는 순간, 남아 있는 통장의 가치는 오히려 커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통장을 접을 때가 아니라, 어디에 쓸지를 다시 설계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