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조합원에게 가장 무서운 소식은 "공사비를 올려 달라"는 시공사의 공문입니다. 이런 요구를 막으려고 2019년 '공사비 검증' 제도가 생겼습니다. 이 제도가 지난 5년간 들여다본 공사비는 23조원이 넘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이 검증한 179건 가운데 177건(98.9%)에서 "증액분을 깎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권고대로 계약이 바뀌었는지 확인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9월 9~11일 파이낸셜뉴스 보도와 국토교통부 설명으로 드러난 공사비 검증 제도의 현실을 정리해 드립니다.
23조원을 검증했고, 4조7010억원을 깎으라고 했습니다
한국부동산원 검증 규모는 매년 커졌습니다. 2022년 2조1188억원(32건)에서 2023년 3조282억원(30건), 2024년 4조7009억원(36건)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9조970억원(52건)으로 거의 두 배가 됐습니다. 올해도 8월까지 이미 4조2196억원(29건)입니다. 공사비 갈등을 겪는 현장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감액 권고액도 함께 커졌습니다. 2022년 4300억원, 2023년 6461억원, 2024년 7913억원, 2025년 1조7214억원, 올해 8월까지 1조1122억원입니다. 5년 동안 모두 4조7010억원입니다. 검증 대상 금액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를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 셈입니다. 부동산원이 지적한 문제는 물량을 부풀리거나 중복으로 계산한 것, 도급 계약과 상관없는 항목을 증액한 것, 단가 근거가 부족한 것 등이었습니다.
지역도 서울에만 몰려 있지 않습니다. 검증 현장 179곳 가운데 서울은 55곳(30.7%)이고, 나머지 70%는 경기·인천과 지방 사업장이었습니다.
권고일 뿐, 따르지 않아도 처벌은 없습니다
문제는 검증 뒤입니다. 검증 요청은 법으로 정한 의무입니다. 조합원 5분의 1 이상이 요구하거나, 공사비가 10% 이상(사업시행인가 뒤 시공사를 뽑았다면 5% 이상) 오르거나, 검증을 마친 뒤 다시 3% 이상 오르면 반드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검증 결과를 따를지는 권고에 그칩니다. 부동산원도 홈페이지에 "공사비 검증의 미이행에 대해 별도의 벌칙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조합이 총회에서 인상안을 의결하면 막을 근거가 없습니다.
사후 관리 장치도 없습니다. 부동산원은 "검증 이후 공사계약 결과에 대한 별도의 제출·관리 규정이 없어 관련 자료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그사이 조합이 낸 검증 수수료는 5년간 180억원이 넘습니다(2025년 65억원).
현장 사례를 보면 제도의 한계가 분명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은평구의 한 사업장은 1866억원으로 검증을 신청했고, 부동산원은 11.3% 줄인 1656억원이 적정하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실제 계약금액은 약 2500억원이었습니다. 검증액보다 800억원 넘게 많습니다. 처음부터 깎일 몫을 10~20% 얹어서 신청하는 방식도 업계에서는 흔하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법 개정은 어디까지 왔나
국토부는 검증 뒤에 분쟁 조정 전문가를 보내는 지원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실효성과 강제력을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도시정비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시공사가 증액을 요청할 때 변동사유서·세부내역서·설계도서 제출 의무화, 상세내역서를 내지 않으면 벌칙 부과 - 조합은 증액 요청 사실을 시장·군수에게 통보 - 도시분쟁조정위원회에 직접 검증을 요청할 권한 부여
9월 8일에는 가로주택·소규모재건축 같은 소규모주택정비사업에도 같은 검증 의무를 적용하는 법안(황희 의원 대표발의)이 나왔습니다. 다만 두 법안 모두 "검증 결과를 반드시 따르라"는 구속력까지 담지는 않았습니다. 투명성은 높아지지만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총회에 남습니다.
조합원이 봐야 할 세 가지
첫째, 검증 신청액과 검증액, 최종 계약액을 나란히 확인하세요. 총회 자료에 세 숫자가 함께 없다면 공개를 요구하셔야 합니다. 검증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공사비가 적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둘째, 검증 뒤 3% 이상 추가 증액이 있었는지 보세요. 이 경우 재검증 대상입니다. 조합원 5분의 1 이상이 모이면 직접 검증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입주권이나 조합원 물건을 사려는 분이라면 비례율과 분담금 추정치가 어느 시점의 공사비를 기준으로 했는지 확인하세요. 검증액을 기준으로 계산했는데 실제 계약액이 더 높다면, 그 차이는 결국 분담금으로 돌아옵니다.
5년 동안 177번이나 "깎으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제도는 경고를 보냈지만, 그 경고를 계약에 반영할지는 여전히 조합원 총회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