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8월 4일)부터 개정 노후계획도시정비법이 시행됩니다. 골자는 두 가지입니다. 1기 신도시 선도지구에서만 시범 운영하던 예비사업시행자 제도를 전국 모든 노후계획도시로 넓히고, 목적이 같거나 비슷한 동의서를 하나로 갈음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절차를 줄여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정작 지금 1기 신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속도'가 아니라 '격차'입니다. 2024년 11월 함께 선정된 선도지구 15곳 가운데 특별정비구역 지정까지 간 곳은 8곳, 일산과 중동은 아직 한 곳도 없습니다.
무엇이 바뀌나 — 동의서와 예비사업시행자
정비사업에서 주민을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은 공사비보다 동의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민대표단 구성에 한 번, 예비사업시행자 지정에 한 번, 사업시행자 지정에 또 한 번. 사실상 같은 내용을 두고 서명을 세 번 받으러 다니는 구조였습니다. 개정법은 이 중복을 정리했습니다. 예비사업시행자 지정에 동의하면 사업시행자 지정에도 동의한 것으로 보고, 특별정비구역 지정 제안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 역시 사업시행자 지정에 동의한 것으로 처리됩니다. 전자서명 동의서도 함께 도입됩니다.
예비사업시행자 제도는 조합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에서 LH나 신탁사 같은 전문기관이 특별정비계획 수립을 돕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초기 단계에서 전문성이 없어 몇 년을 헤매는 구역이 많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그동안 선도지구에만 적용되던 것이 이제 부산·인천·대전 등 전국 노후계획도시로 확대됩니다.
한 가지 함께 봐야 할 조항이 있습니다. 개정법은 권리산정기준일을 기본계획 수립·고시 이후로 설정할 수 있게 하고, 기본계획 공람 중에도 건축·토지분할 등 행위제한을 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동의서 위조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이 매겨집니다. 절차를 풀어주는 만큼 지분 쪼개기 같은 투기 유입은 조이겠다는 뜻입니다. 매수를 검토 중이라면 해당 구역의 권리산정기준일이 언제로 잡혔는지가 입주권 여부를 가르는 첫 관문이 됩니다.
절차보다 먼저 걸린 것 — 이주와 사업성
문제는 지금 1기 신도시를 붙잡고 있는 병목이 서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분당은 오히려 너무 빨라서 문제입니다. 성남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시범단지(3713가구), 양지마을(4392가구), 샛별마을(2843가구), 목련마을(1107가구) 등 1만2055가구 규모의 정비계획안이 통과되며 4개 선도지구가 모두 사업시행자 지정을 마쳤습니다. 대신 성남시는 정비구역 지정을 연간 1만2000가구로 제한하고 물량 이월도 허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분당 재건축과 구도심 정비사업이 동시에 굴러가는 상황에서 이주 수요가 한꺼번에 터지면 전월세 시장이 흔들린다는 판단입니다. 주민들은 제한 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자체 입장에서는 받아줄 근거가 마땅치 않습니다.
일산은 반대입니다. 기준용적률이 300%로 1기 신도시 다섯 곳 중 가장 낮습니다. 용적률이 낮으면 늘릴 수 있는 가구 수가 적고, 그만큼 일반분양으로 메울 재원이 줄어듭니다. 분담금이 커진다는 뜻입니다. 주민들이 350% 상향을 요구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선도지구로 뽑힌 지 1년 8개월이 지나도록 특별정비구역이 한 곳도 나오지 않은 것은 동의서를 못 걷어서가 아니라, 걷을 만한 사업성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봐야 하나
올해 정비구역 지정 상한은 일산 2만4800가구, 중동 2만2200가구, 분당 1만2000가구, 평촌 7200가구, 산본 3400가구로 잡혀 있습니다. 숫자만 보면 일산이 가장 큽니다. 그러나 상한은 '허용된 최대치'이지 '예정된 물량'이 아닙니다. 분당은 상한이 병목이고, 일산은 상한이 남아도는 상태입니다. 같은 표에 적힌 숫자가 도시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체크할 것은 세 가지로 좁혀집니다. 첫째, 특별정비구역 지정 여부입니다. 선도지구 선정은 출발선이고, 지정이 실제 진도입니다. 둘째, 해당 지자체의 연간 지정 물량과 이주 계획입니다. 사업성이 좋아도 순번이 뒤라면 시간이 그만큼 늘어납니다. 셋째, 기준용적률과 공공기여율입니다. 이 둘이 분담금을 결정하고, 분담금이 결국 동의율을 결정합니다.
개정법은 서류 단계에서 1~2년을 줄여줄 수 있는 제도입니다. 다만 이주 대책과 사업성이라는 두 병목은 법 시행일이 지난다고 자동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8월 4일 이후 나올 각 지자체의 지정 일정과 기준용적률 조정 여부를 함께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제도가 바뀐 날보다, 내 단지의 순번이 몇 번인지가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