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통장 가입자가 2,600만 명 아래로 내려앉았습니다. 5월 말 기준 전체 가입자는 2,593만 명. 한 달 새 9만 명 넘게, 1년 새 46만 명 가까이가 통장을 접었습니다. 2022년 6월 2,86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이 3년째 이어지는 중입니다. '내 집 마련의 첫 관문'으로 불리던 통장을, 사람들이 조용히 버리고 있습니다.
'청포족'은 왜 통장을 접나
이유는 단순합니다. 넣어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서울 주요 단지의 당첨 가점 커트라인은 해마다 뛰었습니다. 평균 당첨 가점은 2023년 56점, 2024년 60점, 2025년 66점으로 올랐습니다. 반포의 한 단지는 최저 74점, 아크로 서초의 소형 평형은 만점(84점) 통장이라야 이름을 올렸습니다. 84점은 무주택 15년, 부양가족 6명, 통장 15년을 모두 채워야 나오는 점수입니다. 4인 가구 가장이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닿기 어려운 벽입니다.
여기에 고분양가와 대출 규제가 겹칩니다. 어렵게 당첨돼도 분양가를 감당할 자금이 없고, 대출은 DSR에 막혀 있습니다. 청약통장의 낮은 금리 대신 활황인 주식으로 자금을 옮기는 움직임도 이탈을 부추겼습니다. '기다림의 자산'이 '묶인 돈'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겁니다.
숫자 속에 감춰진 신호 — 1순위가 빠진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누가 떠나느냐입니다. 지난 1년간 1순위 가입자는 약 76만 명 줄었지만, 2순위는 오히려 30만 명 늘었습니다. 얼핏 상쇄되는 듯 보이지만 의미는 정반대입니다.
1순위는 통장을 오래 유지해 온 실수요 대기자입니다. 이들이 빠진다는 건, 가장 절실하게 청약을 준비하던 계층이 '가망 없음'으로 판단하고 손을 뗐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2순위가 느는 건 특별공급이 확대되며 새로 진입한 층이 아직 남아 있다는 신호입니다. 즉 통장 시장의 무게추가 '오래 기다린 실수요'에서 이탈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지역별로는 분양가가 가장 비싼 경기·인천과 서울에서 감소 폭이 가장 컸습니다.
왜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닌가
청약통장 이탈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파장은 더 넓습니다. 청약저축은 주택도시기금의 핵심 재원입니다. 이 기금은 공공임대 공급, 전세자금·디딤돌 대출, 저출생 주거 지원의 밑돈으로 쓰입니다. 통장을 깨는 사람이 늘수록 서민 주거를 떠받치는 재원 자체가 얇아지는 구조입니다.
실수요자라면 지금 세 가지를 봐야 합니다. 첫째, 통장은 쉽게 해지하지 마십시오. 무순위 청약이 무주택·거주자 중심으로 개편되고, 청약 가점제도 실수요에 유리한 방향으로 손질이 논의되는 중입니다. 규칙이 바뀌면 오래된 통장의 값어치는 되살아납니다. 둘째, 본인의 가점을 냉정히 계산해 '서울 인기 단지'와 '수도권 외곽·지방 추첨제'로 전략을 나누십시오. 셋째, 정부가 청약통장 금리나 소득공제 혜택을 손보는지 지켜보십시오. 이탈이 재원을 흔드는 만큼, 붙잡기 위한 유인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통장을 버리는 결정은 5분이면 됩니다. 그러나 다시 15년을 채워야 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시장이 차갑다고 관문까지 닫아둘 이유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