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당첨받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집을 짓기도 전에 예약하듯 당첨자를 뽑는 공공 사전청약입니다.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몇 년 먼저 당첨의 안도감을 주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안도감이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2021~2022년 사전청약에 당첨된 사람들이 2026년 본청약 창구에서 마주한 것은, 그때 안내받은 것보다 1억~2억원 오른 분양가와 눈에 띄게 얇아진 대출이었습니다.
3년을 기다렸더니, 값이 먼저 뛰었다
숫자가 상황을 말해줍니다. 2021년 이후 사전청약을 진행한 곳은 99개 단지, 약 5만2000가구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실제로 본청약까지 마친 곳은 13개 단지뿐입니다. 그리고 이 13곳에서 예외 없이 값이 올랐습니다. 절반은 사전청약 추정 분양가보다 15~20%, 나머지 절반은 20~30% 상승했습니다.
경기 남양주왕숙2 A3블록 전용 84㎡는 5억6330만원에서 7억3245만원으로 정확히 30% 올랐습니다. 더 극적인 사례는 고양창릉입니다. 같은 신도시 안에서 4월 말 공고한 S-1블록과 6월 말 공고한 S-4블록의 전용 84㎡ 분양가는 7억8300만원과 8억6500만원. 불과 두 달 사이에 8000만원이 벌어졌습니다. S-4블록은 사전청약 당시 6억6700만원이었으니, 당첨자 기준으로는 1억9800만원을 더 마련해야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게 된 셈입니다. 공사가 지연되는 동안 불어난 공사비가 고스란히 분양가에 실린 결과입니다.
대출은 오히려 뒤로 갔다
값만 문제가 아닙니다. 값을 감당하게 해줄 대출이 함께 후퇴했습니다. 사전청약 당시 안내됐던 조건은 파격적이었습니다. 전용 모기지로 분양가의 최대 80%, 5억원까지, 금리는 연 1.9~3.0% 고정, 만기 40년. 이 조건을 믿고 자금 계획을 세운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본청약 공고에서 그 전용 모기지 문구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일반 디딤돌대출 기준이 적용되면서 한도는 4억원, LTV 70%, 만기 30년으로 줄었고 금리 상단은 연 4.5%까지 열렸습니다. 5억원을 빌린다고 가정하면 월 상환액은 약 179만원에서 253만원으로, 매달 74만원이 무거워집니다. 논란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LTV 80%·DSR 미적용으로 5억원 한도는 유지하되, 금리와 만기는 신청 시점의 디딤돌 요건을 따른다"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한도는 지켰지만 금리·만기라는 실질 부담은 시장에 맡긴 절충입니다.
더 무거운 짐은 중도금입니다. 본청약 공고에는 "집단대출 규제로 중도금 집단대출 미정"이라는 안내가 붙었습니다. 국토부는 2027년 1분기 협약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그 사이 당첨자는 중도금을 스스로 조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열에 넷이 계약을 포기했다
결과는 이탈로 나타났습니다. 고양창릉 S1블록은 362가구 중 150가구, 41.4%가 계약을 포기했습니다. S5·S6블록도 984명 중 267명, 27.1%가 떠났습니다. 남양주왕숙2 역시 25~29%대 이탈률을 보였습니다. 한때 23.7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첨증을 손에 쥐었던 사람들이, 정작 집이 눈앞에 다가오자 등을 돌린 것입니다. 정부는 이미 2024년 5월 공공 사전청약 신규 시행을 중단했습니다. 제도 자체가 사실상 실패를 인정한 상태에서, 남은 당첨자들만 그 후과를 떠안고 있는 형국입니다.
무엇을 봐야 하는가
사전청약 당첨자라면 지금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첫째, 내 블록의 본청약 확정 분양가가 당시 추정가보다 얼마나 올랐는지입니다. 둘째, 전용 모기지가 아닌 디딤돌 기준으로 바뀐 대출 한도·금리·만기를 오늘 시점의 실제 조건으로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셋째, 중도금 집단대출 가능 여부와 시점입니다. 이 세 가지가 확정되기 전까지 '먼저 당첨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사전청약을 준비하는 무주택자에게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분양가는 공고문에 찍힌 그 숫자가 아니라, 입주 시점의 공사비와 대출 환경까지 얹힌 값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값'이 아니라 '몇 년 뒤의 값'을 견딜 수 있는지가, 청약의 진짜 관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