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만 보면 조합이 유리해 보입니다. 여의도 광장아파트 38-1 재건축 조합은 지난 6월 19일 시공사 입찰 공고를 내면서 예정 공사비를 3.3㎡당 1,590만원으로 못박았습니다. 서울 정비사업을 통틀어 역대 최고가입니다. 그런데 첫 현장설명회에 나타난 건설사는 현대건설 단 한 곳. 경쟁 입찰이 성립하지 않아 유찰이 유력해졌고, 조합은 2차 공고 뒤 수의계약 전환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최고가를 불렀는데 경쟁이 붙지 않는 이 장면이, 지금 정비사업 시장의 온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1,590만원이라는 숫자의 무게
광장아파트 38-1은 부지 1만167㎡에 지상 최고 52층, 414가구로 지어지는 여의도 한강변 랜드마크 사업입니다. 이 단지의 1,590만원은 인근 목화아파트(1,370만원)보다 16% 높고, 그동안 서울 최고 수준이던 서초 신반포22차(1,300만원)나 강남권 평균을 20% 넘게 웃돕니다. 성수·압구정 주요 구역이 3.3㎡당 1,100만~1,200만원대에서 움직이는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뚜렷합니다.
공사비가 이렇게 뛴 데는 세 가지가 겹쳐 있습니다. 첫째는 원가입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100에서 130~140선까지 올랐습니다. 시멘트·철근 같은 핵심 자재와 노무비가 함께 밀어 올린 결과입니다. 둘째는 초고층 프리미엄입니다. 50층대 설계에는 피난안전구역, 특수 자재, 글로벌 설계사 참여 같은 추가 비용이 따라붙습니다. 셋째는 안전·규제 비용입니다. 주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강화로 안전관리에 드는 돈 자체가 늘었습니다.
왜 최고가에도 한 곳만 왔나
여기서 핵심을 짚어야 합니다. 공사비가 역대 최고라는 건 조합이 후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돈을 줘야 지을 수 있는 현장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초고층·하이엔드 사양을 요구하면 시공 난도와 리스크가 함께 올라갑니다. 원가가 계속 움직이는 국면에서 건설사는 무리한 저가 수주 대신 수익성이 확실한 사업만 골라 들어갑니다. 그 결과 '돈은 많이 주는데 조건은 까다로운' 현장에는 오히려 경쟁자가 줄어드는 역설이 생깁니다.
조합 입장에서 유찰과 수의계약은 양날의 칼입니다. 사업 속도를 지키려면 협상 테이블을 여는 게 맞지만, 경쟁이 사라진 협상에서는 설계·마감·조건을 조합 뜻대로 관철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최고가를 불렀다고 최고의 조건을 얻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것
첫째, 공사비는 이제 분양가의 선행 지표입니다. 여의도 신축 분양가가 평당 1억원 안팎까지 거론되는 배경에 이 1,590만원이 있습니다. 관심 단지가 있다면 조합이 확정한 3.3㎡당 공사비부터 확인하십시오. 이 숫자가 곧 분양가와 추가분담금의 밑그림입니다.
둘째, 이번 금액은 강남·목동 등 다른 정비사업장의 '단가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앞으로 시공사를 뽑는 구역마다 협상 기준선이 한 단계씩 올라갈 수 있습니다.
셋째, 입주권·조합원 물건을 볼 때는 공사비 상승이 추가분담금으로 얼마나 전이되는지, 조합의 사업 단계와 자금 계획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최고가 공사비는 랜드마크의 조건이자, 동시에 분담금 리스크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