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구역의 집은 두 가지 값을 갖습니다. 하나는 지금의 낡은 집값이고, 다른 하나는 새 아파트를 받을 권리, 즉 입주권의 값입니다. 그런데 이 둘이 항상 함께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매매계약은 유효하게 체결되고 등기도 넘어가는데, 정작 입주권은 따라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수인은 새 아파트 대신 현금청산 대상이 됩니다.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입니다. 서울시 부동산정책개발센터 집계 기준(2026년 3월), 이 규제에 묶인 서울의 정비사업장은 128곳입니다. 재건축 79곳, 재개발 49곳입니다.
왜 갑자기 128곳인가
이 제도 자체는 새로울 게 없습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오래전부터 투기과열지구 안에서는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 취득한 사람에게 조합원 지위를 승계하지 않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신탁방식 재건축이라면 기준이 더 앞당겨져 사업시행자 지정고시 이후가 됩니다.
달라진 것은 규제의 내용이 아니라 규제가 덮은 면적입니다. 지난 1년 사이 수도권에서 새로 지정된 투기과열지구가 15곳에 이르고, 서울은 기존의 강남·서초·송파·용산 바깥으로 지정 범위가 확대되면서 21개 자치구의 정비구역이 한꺼번에 규제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제까지 팔 수 있던 집이, 지도의 색이 바뀌면서 팔아도 입주권이 넘어가지 않는 집이 된 것입니다. 목동신시가지 대다수 단지, 여의도한양아파트, 반포미도1차 같은 이름들이 이 목록에 들어 있습니다.
예외는 다섯 갈래, 그러나 문은 좁습니다
법이 퇴로를 막아둔 것만은 아닙니다. ①1가구 1주택자가 10년 이상 보유하고 5년 이상 거주한 경우 ②근무·생업상 이전 ③장기 질병 치료 ④상속주택 처분 ⑤해외 이주, 그리고 사업이 법정 기간 이상 지연된 경우에는 지위 승계가 허용됩니다.
문제는 이 요건들이 생각보다 통과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10년 보유·5년 거주는 한 세대가 한 집에서 사실상 인생의 한 시기를 통째로 보낸 수준의 조건입니다. 게다가 공동명의라면 계산이 한층 까다로워집니다. 국토교통부는 2025년 11월 유권해석을 바꿔, 공동소유자 전원이 각자 요건을 충족해야 승계가 가능하다는 쪽으로 기준을 조였습니다. 부부 공동명의에서 한 사람만 거주 기간이 모자라도 문이 닫힐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해석이 2년 만에 뒤집히면서 현장에서는 혼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3년만 한시적으로"를 요청했습니다
서울시는 이 지점을 국토부에 정식으로 건의해 두었습니다. 투기 수요를 차단한다는 제도 취지는 유지하되, 새로 규제 대상이 된 정비구역에 한해 지위 양도 제한을 3년간 한시적으로 완화해 달라는 것입니다. 소규모 정비사업은 제한 시점을 조합설립인가에서 사업시행계획인가 이후로 늦춰 달라는 요청도 함께 넣었습니다.
근거는 현장의 민원입니다. 서울시가 신규 정비구역 117곳을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나온 호소가 분담금 부담 64건, 다음이 주거 이전 제약 33건, 상속 등 기타가 30건이었습니다.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집을 팔고 나가야 하는데 매각 자체가 막히는 구조가 겹치면, 조합원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됩니다. 서울시 관계자가 "거래가 장기간 막히면 재산권 침해를 넘어 사업 반대와 일정 지연까지 키울 수 있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국회에서도 재건축의 제한 시점을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로 늦추는 도시정비법 개정안이 발의돼 계류 중입니다.
지금 무엇을 봐야 하나
실수요자와 투자자 입장에서 확인 순서는 분명합니다.
첫째, 구역의 진행 단계를 날짜로 확인하십시오. "재건축 추진 중"이라는 말은 아무 정보도 주지 않습니다. 조합설립인가일이 언제인지,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났는지, 신탁방식이라면 사업시행자 지정고시일이 언제인지가 전부입니다.
둘째, 매도인의 예외 요건을 서류로 확인하십시오. 보유 기간은 등기부, 거주 기간은 주민등록초본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공동명의라면 소유자 각각을 따로 봐야 합니다. 중개사의 구두 설명만 믿고 계약하면 안 됩니다.
셋째, 계약서에 안전장치를 넣으십시오. 조합원 지위 승계가 불가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의 해제 조항과 위약 처리를 명시해 두는 것이 최소한의 방어입니다.
넷째, 제도 변경은 아직 '건의'와 '계류' 단계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3년 한시 완화도, 개정안도 확정된 것이 없습니다. 완화를 전제로 지금 매수하는 것은 법 개정에 베팅하는 일입니다.
입주권이 붙지 않은 정비구역 주택은 낡은 집 한 채일 뿐입니다. 이 시장에서 가격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날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