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을 한 번이라도 지켜본 분이라면 압니다. 이 사업의 진짜 적은 반대 주민도, 높은 공사비도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요. 조합을 세우고,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관리처분을 통과하기까지 십수 년이 흐르는 동안 금리도, 공사비도, 조합원의 인내심도 바닥납니다. 서울시가 이 '시간'에 초시계를 들이댔습니다. 정비사업의 각 단계마다 '여기까지는 며칠 안에'라는 표준 기한을 박아 넣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좁은 병목인 관리처분 단계에서, 정작 검증을 맡은 기관이 "그렇게 줄지 않는다"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각 단계에 '표준 시간표'가 붙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신속통합기획 2.0'의 후속 조치로, 정비사업 전 과정에 표준 처리기한을 설정했습니다. 구역 지정 2년, 조합 설립 1년, 사업시행계획 인가 1년7개월, 관리처분계획 인가 1년9개월, 이주·철거 1년8개월, 착공·준공 4년입니다. 각 관문에 '이 정도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는 기준선을 그은 셈입니다.
이 중 시가 가장 벼르는 지점이 관리처분입니다. 관리처분 인가는 '누가 어느 집을, 얼마의 분담금으로 받는지'를 확정하는 사업의 마지막 관문이고, 여기만 통과하면 이주·철거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 그동안 평균 3년이 걸렸습니다. 시는 이를 1년9개월로, 1년 넘게 앞당기겠다고 했습니다.
방법은 크게 다섯입니다. ▲다음 절차를 미리 당겨서 하고(사업시행인가 6개월 전부터 감정평가사를 뽑아 자산평가 착수) ▲실효성 낮은 절차는 생략하며(분양공고 전 추정분담금 검증 폐지) ▲처리기한제를 도입해 자산평가는 '사업시행인가+7개월', 관리처분계획은 '사업시행인가+14개월' 안에 끝내도록 못박고 ▲민원 해소를 앞당기며 ▲타당성 검증을 공람과 동시에 진행하고 검증기관을 부동산원에 SH공사까지 확대하는 것입니다.
왜 지금, 이 이야기가 중요한가
구역 지정이 2012~2020년 연평균 12곳에서 2021년 이후 연평균 36곳으로 세 배 늘었습니다. 사업지가 쏟아지면서 인허가 창구에 병목이 생겼고, 그 병목이 곧 '착공 지연'과 '공급 지연'으로 이어집니다. 서울시가 2031년까지 주택 착공을 밀어붙이려면, 결국 이 행정 구간을 줄이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는 판단입니다.
자치구도 발을 맞추고 있습니다. 은평구는 구청장 직속 정비사업 통합 민원 담당관을 신설했고, 강동구는 도시개발 TF를 구청장 직속으로 확대했으며, 양천구는 원스톱 행정지원 체계와 이주안정지원센터를 뒀습니다. 서울시는 아예 '자치구 종합평가' 제도를 도입해, 사업 기간 단축과 인허가 실적을 평가한 뒤 우수 자치구에 재정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구청장의 성적표에 '재건축 속도'가 올라간 것입니다.
그런데 검증기관이 반대했다
이 대목에서 판이 갈립니다. 검증을 맡는 한국부동산원은 "검증 지연은 절차 탓이 아니라 필수 서류 미비 탓"이라며, 기한을 조인다고 실제로 줄어드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서류가 안 갖춰져 늦어지는 것을 '절차 때문'으로 오인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정비업계도 다른 각도에서 우려합니다. 공람 단계에서 아직 의결되지 않은 내용을 미리 검증해 두면, 인가 후 내용이 바뀔 때 처음부터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양 대상자가 한 명만 달라져도 분양 비율이 연동되어 바뀌는 현실에서, '미리 당긴 검증'이 오히려 되돌이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속도를 내려고 순서를 바꿨다가, 되레 두 번 일하게 될 위험입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것
첫째, 표준 기한은 목표치이지 보장이 아닙니다. '관리처분 1년9개월'은 행정이 지향하는 선일 뿐, 조합 내부 갈등이나 감정평가·분담금 다툼이 붙으면 그 시계는 언제든 멈춥니다. 매물의 사업 단계를 볼 때 '표준 기한상 남은 시간'과 '실제로 걸릴 시간'을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둘째, 관리처분 통과 여부가 입주권 시세의 분기점입니다. 이 관문을 넘으면 이주·철거로 직행하며 사업 불확실성이 크게 줄고, 그만큼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시가 이 단계를 실제로 앞당기는 구역이라면 시세 반영도 빨라질 수 있습니다.
셋째, 검증기관의 반박을 기억해 두십시오. 서류·감정평가 같은 실무가 준비된 조합이라야 단축의 수혜를 봅니다. '속도전 정책'이 발표됐다는 사실보다, 내가 보는 구역의 조합이 그 속도를 감당할 실무 역량을 갖췄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정책은 도로를 넓혔을 뿐, 달리는 것은 조합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