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구역의 입주권을 사면서 가장 먼저 계산하는 숫자는 분담금입니다. 조합이 안내한 예상 분담금에 프리미엄을 더해 매수 가격을 정하죠. 그런데 최근 조합 사무실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그 계산을 흔듭니다. 시공사가 자재비·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조합원 한 사람당 수천만 원의 추가 분담금이 통지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통지가 아직 확정된 숫자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것을 걸러낼 제도적 장치가 오히려 덜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가는 7개월 연속 올랐습니다
2026년 3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34.42입니다. 2020년을 100으로 놓았을 때 6년 만에 34.4% 오른 수치로, 2025년 9월부터 7개월 연속 상승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의 한 재개발 구역에서는 3.3㎡당 공사비 기준이 1~2년 사이 584만 원에서 959만 원으로 약 64% 뛰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8일 올 하반기 건설공사 표준시장단가를 공고하면서, 종전의 2월 기준 지수 대신 4월 말 발표되는 3월 기준 지수까지 즉시 반영했습니다. 단가에 최신 물가를 더 빨리 반영하겠다는 취지지만, 조합 입장에서는 시공사가 증액을 요구할 근거가 그만큼 또렷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임미화 전주대 교수는 중동 정세가 실제 공사비에 반영되는 데에는 시차가 있어 하반기부터 원가 상승 압력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공사비 검증'은 줄었습니다
도시정비법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한국부동산원 등 검증기관에 공사비 증액의 타당성을 확인받는 절차를 두고 있습니다. 이 제도의 이용 건수는 2019년 3건에서 2021년 22건, 2022년 32건, 2024년 36건, 2025년 52건까지 꾸준히 늘었습니다.
그런데 2026년 들어 흐름이 꺾였습니다. 1~5월 검증 완료는 13건, 월평균 2.6건입니다. 지난해 월평균(약 4.3건)과 견주면 사실상 반토막입니다. 공사비가 가장 가파르게 오르는 시기에 검증은 되레 줄어든 셈입니다.
이유는 시간입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인건비와 자재값이 오르는 국면에서는 대치가 길어질수록 공사 기간 지연으로 총공사비가 더 늘어나기 때문에, 일부 증액을 감수하고 빨리 마무리하는 편이 낫다고 설명합니다. 2026년 3월 건설수주액은 전년 대비 30.3% 늘었지만 실제 시공 실적인 건설기성액은 6.8% 줄었습니다. 착공 지연이 곧 비용인 국면에서 조합이 검증을 택하기 어려운 배경입니다.
특약이 있어도, 절차가 진짜 방어선입니다
"물가 변동으로 인한 공사비 조정은 없다"는 특약을 도급계약서에 넣어둔 구역도 있습니다. 하지만 특약만으로 증액 요구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런 조항을 갖춘 구역에서도 증액 통지가 나가고 있습니다.
조합원을 실질적으로 지켜주는 것은 계약서의 한 줄보다 절차입니다. 도시정비법 제45조 제1항 제4호는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계약은 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고, 법원은 이를 강행규정으로 봅니다. 총회 의결 없이 체결된 공사비 증액 약정은 무효라는 것이 확립된 판례입니다. 공사비 검증 절차(도시정비법 제29조의2) 역시 조합원 이익 보호를 위한 강행규정이라는 서울고법 판단이 대법원 상고기각으로 확정된 바 있습니다.
추가 분담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판례는 납부 의무가 확정적으로 발생하려면 관리처분계획 변경 인가가 있거나, 최소한 총회에서 조합원별 분담 내역이 명시적으로 의결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 절차 없이 걷은 돈은 부당이득 반환 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봐야 하나
입주권을 매수하려는 분이라면 조합이 안내한 예상 분담금을 '현재 값'으로만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합니다. 확인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관리처분계획 변경 인가 이력입니다. 최근 변경 인가가 있었는지, 그때 총사업비와 조합원 분양가가 얼마로 잡혔는지를 봐야 합니다. 둘째, 최근 총회 안건과 의결 내용입니다. 공사비 증액과 조합원별 분담 내역이 안건으로 올랐는지, 부결·보류됐는지가 앞으로의 변동 폭을 가늠하게 합니다. 셋째, 공사비 검증 신청 여부입니다. 검증을 거쳤다면 증액 근거가 한 차례 걸러진 것이고, 생략됐다면 그 이유를 물어볼 만합니다.
이미 조합원이라면 시점도 중요합니다. 관리처분계획에 다툴 사유가 있다면 인가 고시 후 90일 이내가 취소·무효확인 소송의 기한입니다. 조합원 총회 자료는 정비사업 정보 공개 창구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통지서 한 장보다 의결서와 인가 고시를 먼저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원가 상승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투자자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는 가격이 아니라 절차입니다. 분담금은 통지되는 순간이 아니라 의결되는 순간에 확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