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집이 더 비싸다"는 말은 오래 상식처럼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가을 경기 남부에서 이 상식과 다른 실거래가 나왔습니다. 화성 동탄 반송동 시범다은마을포스코더샵 전용 84㎡가 지난 13일 9억5550만 원에 팔렸습니다. 같은 단지 120㎡의 올해 최고가는 9억3000만 원입니다. 더 작은 집이 더 비싸게 거래된 것입니다. 단지 하나의 예외인지, 주거 수요의 흐름이 바뀌는 신호인지 짚어보겠습니다.
동탄·영통·광교에서 반복된 역전
헤럴드경제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10월 20일 보도), 이런 사례는 여러 곳에서 나왔습니다.
- 수원 영통 영통아이파크캐슬2단지: 84㎡가 7월 말 12억4000만 원에 팔려 105㎡ 올해 최고가(11억8000만 원)를 넘었습니다. - 수원 광교 푸르지오월드마크: 84㎡가 7월 31일 15억8500만 원에 거래돼 106㎡ 최고가(6월 1일, 15억3000만 원)보다 5500만 원 높았습니다. 올해 중위가격도 84㎡가 15억 원으로 106㎡(14억3500만 원)보다 높습니다. 지난해에는 106㎡가 1억9200만 원 더 비쌌습니다. - 동탄 시범다은마을포스코더샵: 98㎡ 최고가(9억6000만 원)와 84㎡의 차이가 지난해 1억500만 원에서 올해 500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더 작은 평형에서도 같은 흐름이 보입니다. 영통아이파크캐슬2단지 59㎡는 이달 15일 11억3500만 원에 거래돼 75㎡ 올해 최고가(9억9000만 원)보다 1억4500만 원 높았습니다. 동탄역센트럴푸르지오 59㎡ 역시 8월 15일 10억8000만 원으로 신고가를 세워 74㎡ 최고가(9억7000만 원)를 넘었습니다.
85㎡라는 선이 수요를 갈랐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꼽는 원인은 대출 조건입니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무주택 임직원에게 최대 5억 원을 연 1.5%로 빌려주는 사내대출을 도입했습니다. 한국경제 보도(7월)에 따르면 이 대출은 처음 설계할 때 '큰 집 대출'이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수도권과 6대 광역시에서는 전용 85㎡ 이하 주택에만 대출해 주기로 정했습니다. 사내대출은 복지성 대출이어서 DSR 같은 금융권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삼성 사업장이 모인 동탄·영통·광교에서는 이 조건이 바로 매수 수요의 크기를 갈랐습니다. 85㎡ 이하는 저리 자금을 쓸 수 있는 직원들이 사려는 집이 됐고, 그보다 넓은 집은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여기에 성과급, 전세 매물 부족, 작은 집을 찾는 1인 가구와 신혼부부 수요가 겹쳤다는 것이 현지 중개업계의 설명입니다. 하나은행 이동현 부동산자문센터장은 다운사이징이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고 봤습니다.
전국 통계는 아직 '큰 집' 편입니다
반대 방향의 숫자도 함께 보셔야 합니다. 같은 날 디지털타임스가 인용한 부동산R114 자료에 따르면, 전국 85㎡ 초과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2020년 8억9189만 원에서 지난해 11억2481만 원으로 5년간 26.1%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60㎡ 이하는 16.1%, 60~85㎡는 13.6% 올랐습니다. 최근 공급이 중소형에 몰려 대형이 귀해졌다는 분석입니다. 다만 이 기사는 대형 평형 분양 단지를 소개하는 내용과 함께 실렸다는 점을 감안해서 읽으셔야 합니다.
두 자료는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전국 평균은 긴 기간의 흐름을, 경기 남부 사례는 특정 수요층과 특정 대출 규칙이 만든 최근 몇 달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평형 프리미엄은 고정된 값이 아니고, 누가 어떤 돈으로 사느냐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이번 사례가 주는 교훈입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것
첫째, 최고가끼리 비교한 숫자는 걸러 보셔야 합니다. 대형 평형은 거래가 드물어 '올해 최고가'가 한두 건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단지 안에서 평형별 중위가격과 거래 건수를 함께 확인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둘째, 이번 역전은 회사 제도라는 조건 위에 서 있습니다. 사내대출 조건은 회사와 노조가 다시 협의하면 바뀔 수 있습니다. 면적 기준이 풀리거나 한도가 줄면 지금의 가격 구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정 수요층에 기댄 가격은 그 수요가 바뀌면 함께 흔들립니다.
셋째, 경매에서는 감정가의 비교 사례를 확인하십시오. 감정평가는 주변 거래 사례를 바탕으로 합니다. 대형 평형 물건의 감정가가 예전처럼 평형 프리미엄을 반영해 매겨졌다면, 지금 실제 수요보다 높게 잡혀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84㎡ 이하 물건은 감정 시점 이후 오른 시세가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감정평가서에서 비교 사례의 거래 시점과 평형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넓은 집과 작은 집 중 무엇이 오를지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지역의 핵심 수요층이 어떤 대출 규칙을 적용받는지는 평형을 고르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