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돌려받지 못한 대출, 즉 부실채권(NPL)이 시장에서 점점 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NICE신용평가 자료를 인용한 11월 1일 블로터 보도에 따르면, 3분기 국내 NPL 입찰시장의 평균 낙찰가율은 65.7%였습니다. 원금 100원짜리 채권이 65원 남짓에 팔렸다는 뜻입니다. 올해 1분기 71.3%, 2분기 66.2%에 이어 세 분기째 내려갔습니다. 금융감독원 집계로 2분기 말 국내 은행의 고정이하여신은 18조9000억원입니다. 2018년 2분기 이후 가장 많습니다. 숫자는 금융 뉴스처럼 보이지만, 이 채권 상당수에는 부동산 담보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담보는 대부분 법원 경매를 거쳐 정리됩니다.
파는 쪽은 늘었는데, 사는 쪽은 지쳤습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4대 은행이 3분기에 판 부실채권은 원금 기준 1조491억원입니다. 1년 전(9245억원)보다 13.5% 늘었고, 이 중 91.1%가 기업대출입니다. 시장 전체로 보면 3분기에 낙찰된 채권 원금은 1조7294억원으로 1년 전과 거의 같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치른 돈은 1조2437억원에서 1조1370억원으로 8.6% 줄었습니다. 같은 양을 팔고 덜 받은 것입니다.
값이 내려간 이유는 사는 쪽에 있습니다. 시장의 주요 매수자는 연합자산관리(유암코)와 대신·하나·키움·우리금융 F&I 등 전업 투자사 다섯 곳입니다. 이들의 평균 매입률은 2023년 87.2%에서 올해 2분기 67.7%로 떨어졌습니다. 돈을 빌리는 비용도 올랐습니다. 이들이 발행한 회사채의 가중평균 금리는 지난해 하반기 2.97%에서 올해 3분기 4.75%가 됐습니다. 업계 평균 레버리지(자기자본 대비 부채) 배율은 2022년 2.6배에서 올해 6월 말 4.7배로 높아졌습니다. 이미 사 둔 채권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새 채권을 살 여력도 줄어든 셈입니다.
상가·공장 담보가 팔리지 않습니다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담보 부동산입니다. 블로터는 은행이 매각하는 부실채권 가운데 상가·근린생활시설 같은 상업용 부동산 담보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의 경매 매각가율도 내려가고 있습니다. 인베스트조선(10월 29일)은 투자사들이 이미 사들인 공장·상가 등 비주택 담보가 경매에서 계속 유찰되면서 현금 회수가 늦어진다고 보도했습니다.
시장의 절반을 맡는 유암코도 기준을 높였습니다. 유암코는 3분기에 원금 기준 8229억원어치를 낙찰받아 시장 점유율 47.6%를 기록했습니다. 낙찰가율은 66.2%로 1년 전보다 4.3%포인트 낮았습니다. 업계는 담보 처분이 불확실해지자 유암코가 인수 심사를 강화한 결과로 봅니다. 우리금융F&I의 낙찰가율은 61.4%로 전업사 가운데 가장 낮았습니다. 이 때문에 4분기에는 시장 평균 낙찰가율 60%가 무너질지가 관건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은행이 부실채권을 투자사에 넘기면, 투자사는 담보를 경매에 부쳐 돈을 회수합니다. NPL을 싸게 샀다는 것은 투자사가 담보를 낮은 값에 처분하더라도 이익을 낼 수 있게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채권이 싸게 팔리는 지금의 흐름은 몇 달 뒤 경매 법정의 물건 수와 최저가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봐야 할까요
첫째, 4분기 낙찰가율 60% 선입니다. 4분기에는 대형 매물이 몰려 유찰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반면 한 증권사 크레딧 연구원은 은행이 이미 충당금을 상당 부분 쌓아 두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거래가 끊기기보다는 가격이 더 내려가는 방식으로 소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습니다. 연말 결산을 앞둔 은행이 얼마나 많이 내놓을지에 따라 내년 경매 물건의 규모가 달라집니다.
둘째, 경매 물건의 채권자 이름입니다. 등기부 근저당권에 '근저당권 이전'이 적혀 있고 채권자가 유암코·○○F&I·○○유동화전문 유한회사라면, NPL로 팔린 물건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채권자는 회수 일정과 목표 가격을 정해 두고 움직입니다. 그래서 유찰을 몇 번 기다리기도 하고, 직접 입찰해 낙찰받기도 합니다. 최저가만 보고 응찰가를 정하기보다 채권 금액과 매입 시점을 함께 따져 보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셋째, 비주택 물건은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지금 부실이 쌓이는 곳은 아파트보다 상가·공장·지식산업센터입니다. 올해 1~8월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경매의 낙찰률은 21%에 그쳤습니다(지지옥션). 감정가의 절반에 낙찰받아도 공실이 이어지면 비싼 값을 치른 것과 같습니다. 낙찰가율보다 임대 수요부터 확인하셔야 합니다.
넷째, 'NPL 고수익' 권유는 경계하십시오. 2016년 대부업법 개정 이후 개인은 금융기관 부실채권을 직접 살 수 없습니다. 요건을 갖춰 금융위원회에 등록한 법인 대부업자 등만 매입할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열린 길은 결국 경매 법정입니다. 채권을 대신 사 주겠다며 확정 수익을 약속하는 권유라면 그것부터 의심하셔야 합니다.
은행이 빚을 싸게 판다는 것은 그 빚에 묶인 부동산도 곧 싸게 나온다는 신호입니다. 다만 싸게 나온다고 해서 모두 싸게 산 것은 아닙니다. 숫자가 내려가는 지금은 물건 수보다 회수 구조를 먼저 읽는 시기입니다.